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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호/기자칼럼] 우리는 후배들이 마음놓고 다닐 수 있는 학교를 꿈꾼다.

양인영 기자l승인2018.10.01l수정2018.10.03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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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수님이 방으로 부르면 절대 혼자 가지마.”, “그 교수님 수업시간엔 치마입고 가지마.” 학교에 입학하고 한 두 번은 들어본 이야기다. 어떤 교수가 성희롱을 자주 하는지는 학생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져있었다. 하지만 행여 불이익이 돌아올까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했다. 학점이 깎일까봐, 졸업을 안 시켜 줄까봐, 내가 내 돈 주고 다니는 대학에서 특정 교수를 조심하며 다녀야했다. 학부생도 이렇게 교수에게 꼼짝을 못하는데, 대학원생은 어땠을까.

교양수업 시간에 “지도교수는 대학원생의 학문적 목숨을 쥐고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 졸업과 학위 취득에 미치는 지도교수의 영향력이 지대해서, 지도교수의 도움 없이는 학계에 입문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원생은 자신의 또 다른 목숨을 쥐고 있는 교수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학문에 오래 매달렸으면 매달렸을수록, 쏟아 부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쉽게 반발할 수 없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이토록 수직적이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교수의 말과 행동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도 섣불리 반박할 수 없다. 그가 가진 권력이 학생들의 눈에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아야한다. 자신이 가진 권력과 거기서 오는 위압감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그 권력과 위압감에 학생들이 겁먹지 않도록,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악용하는 교수들이 있다. 어딘가에 있을 ‘그’는 학생이 자신의 말을 거부할 수 없음을 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뒷배삼아 학생들을 희롱한다. 그는 권력형 성폭력의 가해자다. 권력형 성폭력이 악질적인 것은 피해자가 거부할 수 없음을 알고도 행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조하는 학교 역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학교가 권력형 성폭력의 가해자인 교수들을 크게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가벼운 처벌로 넘어간 선례가 생겼다. 처벌이 잘못을 방지하고 죄를 묻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학교도 마찬가지로 과거 에 가해교수들에게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 방학을 포함한 3개월의 정직. 정직을 마친 교수는 임기를 끝까지 채우고 정년퇴임했다. 또는 정년퇴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첫 번째 L교수가 그랬고, H교수가 그렇다. 이 결정이 두 번째 L교수를 만들었다.

우리학교의 과거는 그래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학교는 또 하나의 사건을 앞에 두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이 사건이 어떻게 끝날지에 주목해야할 것이다. 또다시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미래에 세 번째 L교수를 만들어낼 것인가. 아니면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 후대에 깨끗한 과거를 물려줄 것인가.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원한다. 우리는 후배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학교를 꿈꾼다. 나는 내 후배에게, “저 교수 조심해.”라고 일러주는 역할을 맡고 싶지 않다.


양인영 기자  0712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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