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10.23 화 14:47

[419호/사설] 가까울수록 수줍게

한국교원대신문l승인2018.10.0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명절의 풍경은 무언가 넘쳐난다. 도로에는 차들이 넘쳐나고, 마트에는 선물세트 상자가 넘쳐나고, 영화관에는 연인들로 넘쳐난다. 음식을 하는 집에서는 기름 냄새가 넘쳐나고, 펼쳐놓은 교자상에는 빽빽하게 접시들로 넘쳐난다. 텔레비전을 켜면 제목을 들어본 적 있는 한국 영화들로 넘쳐난다. 사람들이 모이면 안부를 가장한 호기심이 넘쳐난다.

공부는 잘하니, 살이 너무 찐 거 아니니, 취직 준비는 잘 되니, 사귀는 사람은 있니. 말이 넘쳐나는 만큼 가족 친지들이 모이는 자리에 다녀오면 지치기 십상이다. 뭔가 억울하거나 못한 말들이 생긴다. 상처를 주거나 받고, 소심한 복수로 서로를 할퀴게 되는 것도 명절 풍경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넘쳐나는 명절 풍경은 언제까지 계속 될까?

 

앞으로 가족의 모습이 어떠할까에 대한 질문은 결국 다음 세대가 살아갈 일상에 대한 고민이고 궁금증이다. 그래서 미래의 가족의 모습을 예측하고자 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곤 했다. EU 위원회에서는 ‘가족플랫폼 프로젝트’를 통해 2035년 가족의 모습을 그려보았고, OECD의 2030년 가족미래 시나리오도 비슷한 맥락에서 진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에 한국 가족의 미래를 그려보는 연구를 수행했다. 2030년 한국의 경제적·정치적 환경과 과학기술의 발전, 사람들의 가치관과 태도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미래의 가족 시나리오를 도출한 것이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미래 가족의 모습은 ‘느슨하지만 친밀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꽁꽁 묶어버린 팽팽한 관계가 아니라, 가깝지만 느슨한 관계. 친밀하고 정을 나누는 따뜻한 온기가 있는 관계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미래 가족의 모습이었다.

 

우거진 숲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이 실개천처럼 보인다. 신기하게도 나뭇가지들이 서로에게 닿지 않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나무들이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현상을 ‘크라운 샤이니즈(Crown Shyness)’, ‘꼭대기의 수줍음’ 이라 한다. 이 현상은 공생을 위해서 햇볕을 골고루 나눠 가지는 나무의 전략이기도 하고, 벌레가 다른 나무로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한 자연의 법칙이기도 할 것이다. 바람이 불 때 나뭇가지들끼리 부딪히는 것을 막기 위한 나무의 현명함의 발현일 수도 있다.

이러한 자연의 현상에 ‘수줍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흥미롭다. 왜 수줍다고 했을까?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기 때문 아닐까? 한없이 가까이 가고 싶고, 덥석 안고 싶고, 끝없이 치대고 싶은 마음 하나와 진짜 그렇게 덥석 다가가기에는 부끄러워지는 마음이 함께 있어서 생겨나는 마음이 ‘수줍음’이다.

가족일수록, 가까울수록,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의 사람일수록 가져야 하는 것이 ‘수줍은 마음’ 이지 않을까. 친밀하지만 느슨한 관계. 그것은 가까운 사람들끼리 갖는 수줍은 마음에서 맺어질 수 있다. 특히 부모나 선생처럼 꼭대기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녀와 제자를 위해 틈과 여지를 만들어 주려는 수줍음. 달려드는 마음이 아니라 머금는 마음이 더욱 필요한지 모르겠다. 가까울수록 수줍게. 

 


한국교원대신문  knuepress@naver.com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교원대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이전홈페이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  대표전화: 043) 230-3340  |  Mail to: press@knue.ac.kr
발행인: 류희찬  |  주간: 손정주  |  편집국장: 박설희  |  편집실장: 김지연/김보임/허주리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설희
Copyright © 2018 한국교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