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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사무사] 중립은 없다

편집장l승인2018.09.19l수정2018.09.1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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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동안, 청람광장은 L교수의 성범죄 고발로 떠들썩했습니다. 피해자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폭로 글을 쓰면 다 피해자인가?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이런 내용의 댓글과 게시물은 수십 개에 달했습니다. 피해자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비이성적이다”, “무식하다”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것입니다. 아직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글쓴이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이 주장은 ‘저 또한 교원대 미투 해당 교수 성추행 피해자입니다’라는 글에 청람인 5523이 단 댓글에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한 문장씩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라고 생각할 겁니다. 나는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겁니다. 섣불리 당신을 응원하는 것도, 그 교수를 비난하는 행동도 하지 않을 겁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행동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선, ‘나는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라고 생각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청람광장에는 이런 말이 굉장히 많이 등장했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청람인 5523과 같은 사람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무죄추정의 진짜 의미는 이들이 말하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자유주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때 자유의 의미는 욕먹지 않을 자유보다는 ‘자의적인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에 가깝습니다. 인하대학교 정태욱 교수는 ‘자유주의 법철학’에서 “공권력의 행사는 정당하지만 그 법적 강제력으로 인해 이는 남용될 수 있고, 언제 어떻게 폭력으로 돌변할지 모른다”라며 자유주의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실제로, 무죄추정을 명시하는 헌법 제27조 4항은 고문과 강압수사 등 폭력을 일삼던 1980년 당시의 수사기관으로부터 피의자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즉 무죄추정의 원칙은 공권력의 폭력으로부터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몇 마디씩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피해자를 응원한다고, L교수에 대한 처벌을 요구한다고 이 원칙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L교수는 아직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았고(직위해제는 공무원법상 징계가 아닙니다) 교수직도 유지되고 있으며 월급도 받고 있으니, 무죄추정의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다시 청람인 5523의 댓글에게로 돌아가면,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장은 이것입니다. ‘나는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겁니다. 섣불리 당신을 응원하는 것도, 그 교수를 비난하는 행동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이 글을 쓰는 행동을 했습니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과, ‘아무 행동도 하지 않겠다’라는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후자는 명확한 의도를 가진 행동입니다. 후자는 나는 당신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한다고 피해자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사건에 연대하지 않고 방관할 것이라고 모두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피해자의 용기를 위축시키는 것이고, 가해자에게 암묵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인스타 손글씨 해시태그 운동 잘 보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더욱 잘 나타납니다. 글쓴이는 “나는 내 입장을 아직 확실히 정하고 싶지 않아요. 다음 참여자로 지목되었지만, 나는 당신들과 아직 함께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해시태그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참여자 수를 한 명 줄일 뿐이라면, 이 글은 ‘나는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으며, 지금 피해자와 연대하지도 않겠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달합니다. 입장을 확실히 정하고 싶지 않다는 말과는 달리 #I'm not_with you_yet이라는 해시태그까지 붙이며 #with_you로 표현되는 연대에 반대하는 뜻을 분명히 밝히기까지 합니다. 이것 역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 글은 아주 적극적으로 해시태그 운동에 반대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본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글쓴이를 비롯한 이들은 분명 중립이 아닌 어떤 입장에 서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람인 5523의 댓글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행동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아직은 그를 비판해서도 피해자를 응원해서도 안 된다는 말인데,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주장입니다. 누군가 피해를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의 말을 귀담아 듣고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적 의무 중 하나이고, 그런 인간을 길러내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입니다. 교육은 인간에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불의에 분노하고, 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라고 가르칩니다. 약자를 보살피고, 도움이 필요한 사회 구성원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미투에 대한 지지는 이 모든 것에 해당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L교수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았음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옳기 때문이고,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로 이 연대와 행동의 힘으로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진실은 영영 밝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는 “이런 글은 미투 글을 올리신 그 분에게도 그리고 같은 피해자인 저에게도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글입니다. 그분들은 피해자 분께 사과하셔야 할 겁니다”라며 이런 주장이 피해자에게 상처를 준다고 직접적으로 말했습니다. 가해자가 비난받는 것에 거세게 분노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정작 자신이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또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피해자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단히 섣부르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습니다. 이곳에 중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중립을 지키겠다는 말은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가해자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중립을, 무죄추정을, 판단 유보를 말하는 이들은 지금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하고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직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습니다. 가해자의 편을 든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기회가 있습니다.

중립이 없는 이곳에서 우리는 어느 한 쪽의 편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피해자의 편입니다. 약자의 편, 고발자의 편, 분노하고 연대하는 자의 편입니다. 권력에 맞서 두렵고 빛나는 용기를 낸 자의 편에 저는 서겠습니다. 한국교원대신문이 거기에 서겠습니다. 그곳에 당신도 함께 서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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