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11.27 화 16:21

[417호/사무사] 그녀의 몸, 그녀의 선택

편집장l승인2018.05.28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낙태는 불법이다. 임신 중단을 원하는 여성은 병원을 물어물어 위험한 불법 수술을 받거나, 인터넷에서 구한 출처가 미심쩍은 낙태약을 복용해야 한다. 낙태 사실이 적발될 경우 여성은 형법 269조 1항, 일명 ‘낙태금지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법무부는 “태아의 생명권은 성장상태와 무관하게 보호되어야 할 중대한 기본권”이라고 낙태죄의 정당성을 설명한다. 하지만 이상하다. 태아의 생명권이 그렇게 중대한데도, 임신부를 폭행해 태아가 사망한 사건에는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시험관 수정 시술 중 이루어지는 18만 건의 인공 유산 역시 전혀 처벌되지 않는다. 또 모자보건법은 혈족 간의 임신이나 부모가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을 경우의 낙태는 허용하고 있다. 혈족 사이에서 생겨난 태아, 장애를 가진 태아의 생명권은 중대하지 않다는 것인가.
출생 후는 어떨까. 매년 270여 명의 영아가 베이비박스에 유기되고, 8~900여 명의 아동이 국내와 해외로 입양된다. 입양 아동의 90% 이상은 미혼모의 아동이다.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하더라도 미성년자 부모나 미혼모는 사회의 차별과 냉대, 그리고 현실적인 생활의 어려움에 맞닥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혼모를 향한 국가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토록 귀중한 아이를 왜 보호하지 않는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만 소중한 생명이고, 태어난 후에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인가. 법무부의 ‘생명권’ 논리에는 구멍이 너무 많다.
아무래도 더 솔직한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지난 23일, 법무부가 작성한 낙태죄 관련 헌법소원 변론요지서가 언론에 공개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은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 사람이다. 인터넷 뉴스 댓글에서 자주 본 익숙한 논리다. 성교의 쾌락은 누리되 그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아서 낙태를 한다. 즉, “너 그렇게 몸 함부로 굴리더니 이럴 줄 알았다.”

낙태를 불법으로, 죄악으로 여기는 시선에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미움이 깔려 있다. ‘결혼도 안 했으면서’ ‘감히’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성에 대한 미움. 낙태 경험 여성이 ‘더럽다’, ‘문란하다’ 등의 욕설을 듣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거쳐 간 사내 새x들은 셀 수 없네”, “어차피 여기저기 남자의 노리개거리”. 데프콘의 노래 ‘그녀는 낙태중’의 가사다. 이들에게는 여성이 자유롭게 성을 향유하는 것은 죄악이고, 임신과 출산은 그런 여성이 받아야 할 ‘벌’이다. 낙태죄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화여대 김은실 교수는 “낙태를 법적으로 규제함으로써 혼인 밖에서 임신한 여성들이 낙태로 그 해결을 찾는 부도덕한 성을 통제할 수 있어서 전통적인 성풍속을 유지할 수 있다”고 낙태죄의 원리를 설명한다.
여성의 ‘부도덕한 성’을 단죄하면서, 자연스럽게 남성의 책임은 사라진다. 임신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지만 낙태에 따른 법적 처벌에서도, 문란하다는 비난에서도, 태어난 아이의 양육 책임에서도 남성은 자유롭다. 거기에 더해 남성에게는 여성의 신체에 관여할 권리까지 주어진다. 모자보건법 14조에 따르면 합법적 낙태를 위해서는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지 않게 해야만 하는 현실이 쓰다. 당연하지만, 여성의 신체 결정권은 여성 자신에게 있다. 성교를 할지 하지 않을지, 임신을 지속할지 중단할지는 여성 자신이 결정한다. 국가는 여성을 향한 통제와 기본권 침해를 멈추라. 낙태죄를 폐지하라.


편집장  knuepress@naver.com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이전홈페이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  대표전화: 043) 230-3340  |  Mail to: press@knue.ac.kr
발행인: 류희찬  |  주간: 손정주  |  편집국장: 박설희  |  편집실장: 김지연/김보임/허주리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설희
Copyright © 2018 한국교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