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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호/사무사] 기억의 무게

편집장l승인2018.04.02l수정2018.04.0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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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는 여행 방식이 있다.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뜻하는 말로, 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등의 여행지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다크 투어리즘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로, 한국의 대표적 다크 투어리즘 여행지는 다름 아닌 제주도다.
제주는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4·3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6년 동안 3만여 명의 제주도민이 군경의 손에 무참히 학살당했다.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에 달하는 숫자로, 그중 21%는 여성, 5.8%는 61세 이상의 노인, 그리고 5.5%는 10세 이하의 어린이였다. 제주를 찾는 다크 투어리즘 여행객들은 200여 명의 양민이 학살당한 섯알오름, 3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학살당한 북촌리 주민 대학살의 현장에 세워진 너븐숭이 4·3 기념관 등의 비극의 현장을 방문한다. 기껏 제주도까지 와서는 아름다운 경치나 신나는 레저를 즐기는 대신 아픈 역사의 현장을 찾아 애도하는 사람들. 이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잊지 않기 위해서, 기억하기 위해서 왔다고.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듣고 또 말했던 문장이다. 아픈 역사를 생각할 때마다, 슬프고 끔찍한 일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마치 기도문처럼 “잊지 않겠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기억하면 죽은 이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간절하게. 기억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기를 쓰고 비극을 기억하려고 하는 것일까.
4년 전 4월, 또 하나의 비극이 일어났다. 304명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차가운 물속에 잠겨 죽어갔다. 국가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학생들을 구해주지도, 한순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의 절규를 들어주지도 않았다. “유가족이 과한 욕심을 부린다”,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때 힘이 된 것이 사람들의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었다고 유가족들은 말한다. 세월호 피해자 故이영만 군의 어머니는 한 인터뷰에서 “길에서 노란 리본을 보면 ‘함께하고 있다, 당신들을 응원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내 편을 만나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잊지 않겠다는 말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변화를 가져왔다. 잊지 않은 사람들은 서명에 참여하고, 거리 행진에 나서고, 책과 노래와 영화를 만들고, 끝내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그렇게 4년이 지나고, 결국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 드러났다. ‘세월호 지겨워 죽겠다, 이제 그만 잊자’는 말에 순종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기억은 단순히 사건을 머릿속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선언이다. 남겨진 이들의 슬픔과 함께하겠다는, 이미 끝난 일이니 그만 잊으라고 말하는 이들과 맞서 싸우겠다는, 기억을 간직하고 후대에 전해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게 하겠다는, 그래서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선언. 많은 사람들의 기억은 그 자체로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오는 3일은 제주 4·3 사건이 발생한지 70년이 되는 날이다. 70주년을 맞아 제주도의 모든 학교는 학생들에게 붉은 동백꽃 배지를 나눠주었다. 잊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아주 작고 가벼운 배지 하나일 뿐이지만, 동시에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안에는 고통 받은 사람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나눠 지탱해야 할 기억의 무게가 담겨 있다.


편집장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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