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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칼럼] 나는 5천년 전부터 아프다

이제인 기자l승인2018.03.19l수정2018.03.1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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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소수의 모계사회나 다른 남성 우위에 비해 여성의 권리가 높았던 몇몇 사회를 제외하면 인류 역사상 문명이 생겨난 이후로 여성은 언제나 남성의 '소유물'이었다.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유대교의 율법에서조차 남성이 여성을 성폭행 했을 때에는 피해자 여성의 아버지에게 벌금을 물거나 아내로 맞이하기만 하면 처벌을 면했다. 벌금을 내는 이유는 '처녀' 여성과 결혼하려는 남성은 여성의 아버지에게 돈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성폭행 당한 여성은 처녀가 아니었기에'상품가치'가 떨어져서 시집을 갈 수 없었고 따라서 남성의 아버지는 딸을 시집보냄으로써 받을 돈을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를 벌금으로 대신한 것이다. 즉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자 재산으로 간주된 것이다.
본래 남성과 여성은 평등했다. 이 땅에 불평등이 찾아오기 전 여성이 임신을 하면 그 아이의 아버지를 알 수 없었고 따라서 많은 인간 사회는 자연적으로 모계사회를 이루고 살아왔다. 그러나 문명이 시작되고 어떤 이유에선가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면서 남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려는 욕구, 즉 여성이 자신의 아이만을 갖게 하도록 하고 그것을 남성이 확신할 수 있도록 여성에게만 불합리한 '정조' 관념을 만들어 가부장적인 폭군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억압은 봉건질서를 타파하고 평등을 향해 대혁명을 발생시켰던 프랑스에서조차 계속되었다. 프랑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이 되어서야 실시되었다. 그조차도 전쟁으로 남성들이 대량 사망하면서 여성들이 남성들을 대신해 공장에 나가 일을 하는 등의 사회진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간, 사피엔스 종은 수만 년 동안 평등하게 살아왔지만 문명이 시작된 이후 수천 년 동안 그 사실을 망각해버리고 말았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살해되고, 강간당하고, 폭행당하고, 때로는 그것이 나의 가족인 남편과 아들로부터 가해졌기에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 단지 남성과 평등해지고 싶었던 여성들이 화형대에서 불태워지는 등의 가혹한 희생을 통해 아주 조금씩 본래의 권리를 되찾아갔지만 그러한 평등마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남성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했던 것이 여성의 역사이다.
미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피해자가 되레 처벌 받는 제도, 가해자에게 더욱 너그러운 상당수의 법조인, 피해자까지 비난하는 사회 분위기. 이는 제대로 된 성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제대로 성교육을 했다면 굳이 페미니즘을 교육과정에 포함하자는 생각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미투를 통해 주변의 여성에 대해 혹시 타인에게 불편함을 끼치거나 때로는 두려움을 주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고 조심하게 된다. 그러기에 현재 남성들이 역으로 느끼는 불안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럴 때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의 어머니가, 누나가, 여동생이 여성으로 살면서 겪은 차별과 두려움에 비하면 남성으로서 최근에 느끼는 불편과 걱정은 정말 작다는 것을.


이제인 기자  chamccae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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