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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혐오 세력에 무너진 ‘까칠남녀’의 용감함

‘성소수자 특집’ 이후 비난 시위와 은하선 작가의 하차 이어져 이현주l승인2018.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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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27일 ‘공주도 털이 있다’로 문을 연 EBS 프로그램 ‘까칠남녀’는 국내 최초 젠더 토크쇼이다. 성차별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사회적 흐름에 따라 성 고정관념과 성 역할에 대한 갈등을 얘기하며 대한민국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매회 “차별에 화난 남녀들의 용감한 토크쇼”라는 멘트를 외치며 시작하는 만큼 ‘까칠남녀’에서는 맘충, 냉동난자, 낙태, 데이트강간 등 논쟁적인 이슈에 대한 출연진들의 솔직한 얘기가 오갔다. 그동안 공중파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문제들을 다루며 호기롭게 진행됐지만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다 보니 매회 방영 후 시청자 게시판은 뜨겁게 달궈졌다.

◇ 가장 뜨거웠던 ‘모르는 형님 - 성소수자 특집’
‘까칠남녀’ 방영 중 특히 이슈가 된 회는 작년 12월 25일과 올해 1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방영된 ‘모르는 형님 - 성소수자 특집’이다. 특집 예고가 공개되자 시청자 게시판에는 응원글과 비난글이 오갔고 EBS 사옥 앞에도 여러 단체들이 시위에 나섰다. 전국교육학부모시민단체연합 등 22개 단체는 ‘어린이혐오 성교육방송 학부모혐오 에로EBS!’, ‘젠더페미 저질방송 EBS 사장 사퇴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EBS 까칠남녀 폐지를 요구했다. 시위 중 “뿡뿡이를 방송하는 EBS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절규하며 당근에 콘돔을 씌워 던지고 사옥 1층을 점거하는 등 돌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대 시위 이후 섹스칼럼니스트이자 해당 특집에 바이섹슈얼로서 출연한 은하선 작가에게 ‘까칠남녀’ 하차가 통보됐다. EBS는 “성소수자 특집이나 시위와 상관없이 개인의 결격사유가 발견돼 하차를 통보했다”고 공식 입장을 표명했지만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은하선 작가는 “EBS 사옥 앞에서 방송 폐지와 출연자 하차를 주장하던 단체들의 요구사항이 이뤄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은하선 작가의 하차로 ‘까칠남녀’의 출연진이었던 손아람 작가, 손희정 문화평론가,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문화연구소 교수 등이 ‘녹화 보이콧’을 선언했고, 한국여성민우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등 42개 시민단체 역시 이에 항의하며 EBS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EBS는 은하선 작가의 하차 통보를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올해 2월 19일에 종영 예정이었던 ‘까칠남녀’는 결국 지난 5일 조기종영으로 막을 내렸다.

◇ 교육방송답게
EBS는 공영방송이자 교육방송이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EBS의 이러한 특성을 언급하며 성소수자를 교육방송에서 다루는 것은 부적합하며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음란하고 방송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의견이 다수 올라와있다. 그러나 방송법 6조 5항에 따르면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까칠남녀’가 성소수자를 게스트로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방송의 역할을 잘 실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교육방송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은 교육이 어린이와 청소년 등 학생들을 대상으로만 이루어지며 사회적인 쟁점보다 기존 가치의 습득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김성애 여성위원장은 “교육방송에 대한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교육방송이 마치 초·중·고등학생들만의 방송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 EBS는 우리 사회 모든 사람들이 평생 계속 배우고 의식을 넓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EBS 방송은 전 국민이 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고 인권적인 사고를 갖고 지평을 넓히도록 새로운 문제제기를 계속 해야 한다. 교육은 기존의 지식과 가치를 재생산 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장 쟁점이 되거나 혹은 우리 사회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들에 대해서 먼저 문제제기 하고 사람들의 인식을 확장시키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EBS가 ‘까칠남녀’라는 젠더 토크쇼를 통해 먼저 하려고 나선 점은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 은하선 작가 하차 통보의 의미는
LGBT 각각을 대표한 출연진들이 등장한 ‘모르는 형님 - 성소수자 특집’이 방영되자 ‘까칠남녀’에 대한 공격과 반대의 목소리는 한층 거세졌다. ‘동성애 방송을 내보내면 청소년이 매춘으로 전락하거나 에이즈 감염에 노출될 것’이라는 등 시청자게시판에는 비난의 글이 수백 건 올라왔고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는 반대 성명을 냈으며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은 EBS 사옥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프로그램 폐지와 출연자 하차를 요구했다. 그 후 1월 13일 고정 출연자였던 은하선 작가는 하차 통보를 받았다.
EBS 측은 “은하선 작가의 하차 이유가 성소수자 특집이나 시위와 상관없이 개인의 결격사유”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개인의 결격사유는 두 번의 민원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먼저 첫 번째 민원은 성소수자 특집 방송에 불만을 가진 시청자들이 제작진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로 항의성 연락을 하던 때인 12월 26일 은하선 작가가 개인 SNS에 ‘담당 PD 번호가 바뀌었다’며 퀴어문화축제 자동 후원 문자 번호를 게재해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 민원은 2년 전 은하선 작가의 SNS에 올라온 십자가 모양의 딜도(자위 도구) 사진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은하선 작가의 행태가 EBS 출연자로서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디저널에 따르면 은하선 작가는 “EBS는 ‘문자 사기 사건’ 등 다른 이유들을 들고 있지만, 이 모든 건 LGBT 방송 이후 벌어진 것”이라며 “이건 개인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지만 여성이고 성소수자인 사람들에 대한 공격”이라고 강조했다. 전교조 김성애 여성위원장은 “은하선 작가는 거의 1년 동안 출연했는데 그동안 단 한 번도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성소수자 특집 편을 앞두고 은하선 작가의 개인 SNS 개정을 뒤지면서 십자가 모양의 딜도 사진과 전화번호 사기사건 등을 찾아내어 공격을 강화했다. 이 공격은 ‘까칠남녀’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구실을 찾지 못했던 사람들이 위의 일들을 구실삼아 하차를 요구한 거라 볼 수 있다. EBS는 은하선 작가의 하차에 대해 공정성, 사람들의 상식을 얘기하지만 방송은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야 하고, 특히 EBS와 같은 방송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목소리를 적절히 반영해야 하는데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 생각한다. ‘지금 이시기에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려해야 했다”며 은하선 작가의 하차에 대해 아쉬움을 내비쳤다. 또한 “담당 CP 측에서 ‘까칠남녀’ 제작진과 출연진의 의견과 다르게 하차를 결정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EBS의 대응은 악플과 공격에도 꿋꿋하게 방송을 지켰던 패널들, PD, 작가들의 노력의 성과를 무너뜨린 것이다. 결국 폐방 요구에 굴복한 것이지 않냐”며 EBS의 태도를 비판했다.


이현주  kyo6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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