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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호] 수능이 뭐길래

편집장l승인2017.12.02l수정2017.12.0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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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흔들리는데 선생님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자습하라고만 했다” “학생들이 대피하기 위해 복도에 나왔으나 선생님들은 교실에 들어가라며 가방까지 챙긴 학생들을 다시 교실에 욱여넣었다. ‘지진이 아니다. 조용하게 자습을 진행하기 바란다’는 방송을 듣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5.4의 지진이 났고 4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동안 친구들은 흐느꼈고 넘어지고 쓰러졌다” 15일 지진 이후 청소년들이 각종 SNS에 올린 글의 내용이다. 갑자기 찾아온 재난과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는 관리자들의 모습은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지진 발생 다음 날은 수능이 예정되어 있었다. 처음에 교육부는 지진에도 불구하고 수능을 연기 없이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들이 내놓은 여진 발생 시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 감독관의 지시를 따를 것. 여진이 발생한다고 감독관 지시 없이 교실 밖으로 나가면 시험 포기로, 진동이 느껴졌을 때 소리를 지르거나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부정행위로 간주. 대학을 가기 위해서, 학생들은 땅이 흔들리고 물건이 떨어져도 시험을 보아야 한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전자기기도 모두 반납한 채, 스스로 대피하지도 함부로 말을 하지도 못하고 감독관의 지시에만 따라야 하는 것이다.
포항교육청의 요청에 따라, 교육부는 두 시간 만에 결정을 번복하고 수능을 일주일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포항 지역의 피해 상황과 여진의 위험성을 고려해 내린 합리적인 결정이었지만, ‘수능 연기’가 불러온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연기 발표 직후 후련하게 던져 버린 책을 다시 찾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적이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수능 직후 여행을 계획한 학생들은 비행기, 숙박 등의 예약을 모두 취소해야 했고, 700여 명의 수능 출제위원과 행정인력은 일주일 더 ‘감금’되었다. 군 당국은 시험을 치기 위해 출타한 장병들이 낸 연가를 공가(公暇)로 변경했으며 수능 응원 찹쌀떡, 초콜릿 등을 만드는 업체들은 큰 손해를 봤다. 모든 대학의 정시 일정이 늦춰졌고, 생리를 미루기 위해 피임약을 먹고 있던 여학생들은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행정안전부, 경찰청, 기상청, 소방방재청 등 사실상 모든 국가 기관이 수능 연기를 위해 동원됐다.
다행히 수능이 치러진 23일에는 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작은 여진이 몇 차례 있었을 뿐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이야’ 하고 넘어가기에는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왜 수능이 연기되는 데 이토록 큰 사회적 비용이 들어야만 했는가?’ 그리고 ‘왜 교사들과 교육부는 지진이 일어나도 자습을 하고 시험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는가?’
그 이면에는 수능의 기형성이 있다. 수능은 한날한시에 전국 60만 명의 수험생이 동시에 치르는 시험으로, 시험일에는 군사훈련과 비행기 이착륙이 정지되고 경찰차가 택시 역할을 하는 등의 진풍경이 벌어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수능이 학생들에게 너무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수능 성적에 따라 지난 12년간의 노력이 평가받고,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이 달라지고, 미래에 갖게 될 직업이 달라지고, 곧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렇게나 중요한 수능이기에 일주일 연기되는 정도의 사건에 온 나라가 난리가 나고, 교사들은 지진이 나도 불이 나도 ‘수능 공부’를 하라며 학생들을 교실에 붙들어 놓으며, 매년 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나면 죄 없는 학생들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수능도 결국 시험일뿐이다. 고작 시험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과 국가의 운영에 그렇게나 중요하다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시험 중 지진이 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수험생들이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이 자신의 안전이 아닌 ‘불안해서 시험장을 나왔다가 시험 포기로 간주되면 어쩌지’라는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지진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능은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다음 재난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지진 대피 훈련을 하고, 화재와 폭설과 홍수와 정전을 완벽하게 대비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 수능의 의미와 위치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편집장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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