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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호/독자의 시선]당신들의 보도윤리

현정우l승인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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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배우가 숨을 거뒀다.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사고였기에 세간의 관심이 몰렸으며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먹거나 슬퍼했다. 나 또한 몹시 슬펐다. 무엇 때문에 그의 부고가 유달리 슬픈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가 연기뿐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동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어서라던가, 아니면 배우로써의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개진하는 모습이 어필이 많이 되어서라던가 여러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의 갑작스런 부고에 일정 이상의 충격을 받았고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를 정도로 관심을 보였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소식에 주목한 것이 보통 사람들 뿐만은 아니었다. 다양한 언론사들과 신문사들이 앞 다투어 이 소식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보다 많은 사진과 자료를 수집하고 노출하려고 애를 썼다. 어떤 신문사는 독자가 보내준 제보라면서 고인의 신체 일부가 노출된 사건 현장 사진을 내보냈으며, 소방서에서 제보한 자료라면서 고인이 들것에 실려 나가는 영상을 기사에 싣기도 했다. 영상에는 “조금만 찍고 갈게요”라고 외치는 기자의 육성이 조그맣게 녹음되어 있었다. 곧이어 수많은 카메라들이 병원 현관 밖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사진이 찍혀 올라왔다. 다음 날 뒤차의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되었고 그의 사망에 의혹을 제기하는 신문사 기사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그 다음 날, 빈소가 마련되었고 빈소 바깥에서도 카메라들은 여전히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충격적이고 커다란 상실감으로 다가왔던 그의 소식이 점점 참혹하고 피상적인 선전과 자극들로 다가왔다. 침묵하고 조의를 표해야 할 배우의 죽음 대신에 이목을 끌기 위한 가십거리와 사건현장 자체의 자극성이 신문 기사 란을 메우고 있었다. 이런 점에 대해서 기자들은 국민들의 알 권리 같은 말들을 언급하면서 종종 자신의 직업과 기사를 변호하곤 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알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말을 할 수 없는 고인을 따돌린 채 그의 마지막 모습을 훔쳐보는 행위까지 허용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알 권리’라는 말은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우리가 봐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 쓰여야 한다. 우리가 차마 보지 않아도 되는 것에까지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그것은 ‘알 권리’가 아니라 ‘보도권력’이 되고 또 다른 방식의 도구적 폭력이 된다. 마지막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마저 침범한 채 촬영을 강행하는 카메라는 고인과 유족들이 슬픔을 나눌 공간마저 배려해주지 않는다. 내게 이런 모든 행위들은 단지 고인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것으로밖엔 느껴지지 않는다.

죽음은 조심히 다뤄져야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은 더 이상 말을 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으며, 자신의 죽음에 대해 해명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번 부고에서 대부분의 언론사들과 기자들이 기사화하고 공론화했던 부분들은 그런 점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악용하고 있었다. 사고 직후의 현장을 찍은 기자의 카메라에 배우의 목소리 ― 스스로의 죽음을 촬영할 것을 불허할 권리는 어디에도 있지 않다. 블랙박스의 영상을 분석하는 뉴스 브리핑에서도 배우 본인이 스스로의 죽음을 해명할 기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을 다룸에 있어서 기자의 카메라와 진술은 기본적으로 일방적인 강제성을 갖게 된다. 모든 사건과 취재 대상을 다룸에 있어서 기자는 그 본인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 그렇기에 그 본인을 추정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 해두어야만 한다. 그러나 최근의, 어쩌면 여태까지 대부분의 연예 기사들은 그런 점들을 분명하게 배반한다.

비슷한 일은 근래에도 벌어졌었다. 몇 달 전에 한 영화가 개봉했다. 어느 기자가 25년 전에 사망한 가수의 의문사에 밝혀진 미스터리를 풀겠다는 취지로 찍은 다큐멘터리였다. 영화는 계속해서 가수의 부인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기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모종의 사건이 일어나 취재 분량이 전부 소실돼 버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더니 바로 다음 장면에서 꿇어앉아 한참을 흐느끼더니 절치부심하고 곧바로 다시 취재에 착수하는 기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 카메라에서 취재 대상들의 모습, 세상을 떠난 고인의 주변인들의 모습은 취재용 가십거리로만 소비되고 오로지 그걸 쫓는 기자의 모습만 부각된다. 이미 세상을 떠난 가수는 해명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종종 사망사건 자체를 가벼운 미스터리쯤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 여기에 그를 기사화하고 공론화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려는 기자들, 비전문가들, 자칭 논객들이 동참한다. 그들이 이런 사건에 의문을 부여하고 해결하고 집착하는 이유를 단정할 순 없지만, 거기에 과연 영웅 심리나 음모론에 근거한 자부심이 추호도 작용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정작 고인 본인의 해명과 유족의 입장은 철저히 묵살당한 당신들만의 진실이 과연 제대로 된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서 너무 무감각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권리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은 어느 것으로도 덮어지거나 지워질 수 없다. 각종 언론사나 신문사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 대중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한 시대의 모습, 순간을 구성할 수 있는 활동이자 조직이기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더욱더 신경 쓰고 조심히 다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현정우  kubrick45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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