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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호/영화도서관]네이키드키스

현정우l승인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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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류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는 어디에서나 고되고 험난할 수밖에 없다. 사회를 만든 사람들은 서로만의 끈을 잇고 굳히며 쉽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자기들만이 아는 시스템으로써의 사회를 유지시킨다. 외부인은, 그 사회에서 배제되어있던 사람들은 그 사회에 끼어들어 나를 버리고 구조의 일원이 되던가, 사회에의 결속을 거부한 채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던가 두 갈랫길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게 된다. 비주류는 후자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낙인이다. 같은 공간에 거주하면서 다수라는 유기체를 따르지 않는 그들을, 사회는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며 주민으로써, 구성원으로써, 심지어는 인간으로써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마저 박탈하고 억압한다.
 <네이키드 키스>는 남성 주류의 사회에서 스스로의 자유와 주체에 타협하지 않는 여성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의 감독인 사무엘 풀러는 스스로가 유대인이었고, 할리우드 산업에 있어서 이점을 많이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할리우드 산업과 돈놀음, 백인 남성들의 시선과 폭력이 존재했던 사회를 경멸했던 영화감독이다. 그는 단 한 번도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과 타협하지 않았고 독립 자본을 통해 오로지 자기 자신의 신념만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자기만의 영화 스타일을 구축해 나갔다. (그 때문인지 그의 영화들은 극장 개봉을 빌미로 종종 심각한 가위질을 당하곤 했다) <네이키드 키스>는 그런 감독의 신념이 사회 속에 도사린 남성 중심 서사와 그 속에 묻혀있는 규칙을 향해 전투적으로 도전하는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켈리는 매춘부이다. 영화는 자신을 착취한 포주의 머리를 힘껏 내리치는 켈리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포주를 때려눕힌 켈리는 이윽고 거울 앞에 서서 가발을 쓰고 자기 몫의 돈을 챙겨 서둘러 그곳을 떠난다. 2년 뒤 외판원으로 분장한 켈리는 그랜트빌이라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 도착한다. 마을의 경감인 그리프는 켈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고객이 되고, 켈리에게 강 건너 단란주점의 일자리를 추천해준다. 새로운 삶을 결심하고 있었던 켈리는 그 제안을 무시하고 마을에서 설립한 장애아동 병원의 간호사로 취직한다. 병원의 동료들과 켈리의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정말 유능하고 재능 있는 간호사라며 칭찬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지만 그리프는 그런 켈리가 여전히 못마땅하다. 한편 그리프의 파티에서 처음 만난 켈리와 마을 유지 그랜트는 둘의 문화 취향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고 곧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점점 사이가 가까워짐을 느낀 켈리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지만 그랜트는 그런 그녀에게 여전히 사랑을 느낀 채 끝내 청혼을 한다. 결혼을 앞둔 어느 날 그리프가 켈리에게 무언가를 털어놓기 위해 병원에 찾아온다.
 <네이키드 키스>는 이야기를 기이한 에너지와 은유로 몰고 나간다. <네이키드 키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뜻을 입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대화 상대가 화면 안에 있는 순간 인물들의 말은 진심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은유와 암시로 이루어진 말들로 그 의중을 어딘가 묻어두기만 한다. 영화의 편집 또한 그렇다. 던져지듯 흘러나오는 음악은 중요한 장면에서 뚝 끊어지고 카메라는 때때로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물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장면의 순서는 서사 속 인과관계보다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의해 주도된다. 끊어지는 음향효과와 접점을 배제한 채 이어지는 숏들 앞에서 관객은 영화를 낯설게 느끼게 되고 아주 단순한 변화나 클로즈업에서마저 등장인물들의 세세한 심리상태와 감정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영화는 계속해서 빛과 그림자의 재배치, 거울과 눈높이의 차이, 불균질한 사운드 같은 영화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건드림으로써 관객에게 서사 외부의 감각을 선사하고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안내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관객은 영화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그랜트빌 마을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언뜻 보면 흔한 마을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는 모습들을 서사와 주변 장치들의 개입을 배제하고 그 모습 자체로만 보게 만듦으로써 관객들의 눈에 한층 경각심을 부여한다. 그리프와 그랜트는 마을에서 가장 명망있는 형사/유지이다. 그리프는 마을의 여자들에게 자기가 고객으로 있는 단란주점 일자리를 제안하고 그 주점의 종업원들, 여점장과 함께 자기들만의 친목을 도모한다. 그랜트는 자신의 시 취향에 공감하는 켈리를 보며 여자가 재색을 겸비하기란 쉽지 않다는 둥의 말을 한다. 단란주점의 여점장은 돈이 없는 병원의 간호사들에게 선금을 주며 일자리를 주겠노라고 꼬드긴다. 명성을 핑계로 애써 숨겨져 오던 마을 내부의 남성 중심으로 구축된 구조와 사건들이 비로소 카메라 앞에서 다른 사건들과 구분되어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회관계, 인간관계라는 명목 하에 지워지던 여성의 주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에 이르를 즈음 영화의 동력은 이야기에 점점 탄력을 부여한다. 청혼을 받아들인 켈리가 막 그랜트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한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켈리는 그랜트의 눈이 어느새 탐욕에 찌들어있음을 발견한다. 그랜트는 자기가 아동성애자임을 고백하고 매춘부인 당신만이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다며 켈리에게 다가온다. 마을 전체에 잠식해있는 비이성적인 무의식과 분위기에 환멸을 느낀 켈리는 그랜트를 둔기로 죽여 버리고 경찰서에 자백을 하지만, 그리프는 켈리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은밀하게 지탱되어 오던 남성들의 질서를 건드리는 켈리의 자백에 마을 사람들은 태연하게 거짓말과 위장된 행동으로 일관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영화는 함부로 입을 열거나 보이는 것을 조작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가 있을 곳에서 묵묵히 서서 본 것을 그대로 얘기한다. <네이키드 키스>는 영화 스스로가 비주얼과 사운드로 엮어지는 매체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조금씩 해체해 나가고 빗겨 감으로써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던 것,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 마주하도록 만든다.
 감옥 속에 있던 켈리는 우연히 창밖을 보다가 그랜트의 집에 있던 여자아이를 발견하게 되고 그리프에게 확실한 증거를 찾았다고 호소한다. 켈리가 여점장의 마수에서 구해주었던 병원 동료 버프는 밤몰래 그리프의 집에 찾아와 켈리의 결백을 고백한다. 그리프는 켈리에게 기회를 주고, 켈리가 찾은 여자아이는 눈을 마주보고 그랜트가 자기를 추행했던 일들을 털어놓는다. 사건은 종결되고 켈리는 짐을 챙겨 경찰서에서 나온다. 켈리의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그녀를 보고 있고, 병원 동료들과 집주인 아주머니는 그런 켈리를 끌어안고 위로를 해 준다.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켈리는 왔던 때와 똑같이 외판용 가방 하나를 든 채 마을을 떠난다. 그렇게 <네이키드 키스>는 여성의 자아와 권리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남성의 무의식으로 이루어진 사회, 여성에 대한 이분적인 의식이 가득 침투한 마을을 있는 힘껏 드러내고 멸시한다. 그러면서도 빠져나올 수 없는 듯 엮여있는 자아 바깥의 사회를 목격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해방, 자유로써의 의지 역시 놓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켈리의 결말은 중의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전의 남성 중심 하자를 뒤로 하고 무시한 채 스스로만의 자유를 다시 되찾은 켈리의 모습은 앞으로의 길에 대한 기대이자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는 여성의 주체를 또 한 번 묵살시키고 위협하는 마을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분명 인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켈리가 다른 마을에 도착한다고 해서 그 마을에 이런 은밀한 남성들만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거나 이런 곤경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란 보장 또한 없다. 그럼에도 <네이키드 키스>는 그를 직면한 채 다시 일어서고 스스로의 자아에 대한 자유를 찾는 모습을 여전히 이야기한다. 보는 관객들 역시 동정어린 시선을 벗어나 켈리의 뒷모습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말이다.
 


현정우  kubrick45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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