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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호/칼럼] 당신의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이현주l승인2017.09.25l수정2017.09.2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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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도 사람이 지내던 공간에는 많은 흔적들이 남는다. 입던 옷가지들, 읽던 책들, 쓰던 가구들. 고인의 유품은 가족, 지인 또는 특수청소 전문 기업에 의해 버려지거나 보관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떠난 자리에 물리적인 유품만 남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에서의 생활과 더불어 온라인에서의 생활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생일, 주소, 출신 학교 등 개인정보 뿐만 아니라 오래 전 싸이월드에 올렸던 감성 가득한 일기부터 다녀온 여행지, 기념일, 그날마다 느낀 감정 등 개인의 깊은 사생활까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때문에 고인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SNS의 알림에 올라오는 등 당황스러운 일이 생겨나기도 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잊혀질 권리’를 지키기 위해 온라인 인생을 정리해주는 특수청소 전문인 ‘디지털 장의사’가 등장했다.

요즘 디지털 장의사는 바쁘다. 고인과 더불어 흔적을 지워달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과거 ‘흑역사’를 지우고자 하는 취업준비생과 결혼 전 남녀는 단골손님이다. 또 다른 단골손님은 인터넷으로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다. 몰카, 지인 능욕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이곳저곳 퍼져가는 자신의 모습에 고통을 참지 못하고 디지털 장의사에게 흔적을 지워 달라 부탁한다. 이러한 피해를 스스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사례에서 보듯, 헤어진 남자친구가 올린 성관계 영상이든 드론을 날려 자취방 안을 몰래 찍은 영상이든 한번 인터넷에 퍼지진 사생활을 개인이 모두 거두어들이기는 어렵다. 피해자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게 싫어 혼자 해결해보려 하지만 일일이 사이트 신고센터에 접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고, 외국 사이트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또한 방송통신위원회와 사이버수사대는 피해자에게 직접 증거를 수집하라고 요구하며 조치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답한다. 그 사이에 영상은 계속 퍼져간다. 범행을 저지르고 고통을 준 건 가해자인데 더 이상 피해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라는 것. 이럴 때 기댈 곳이 디지털 장의사다. 몇 백 만원의 계약을 통해 그들의 ‘잊혀질 권리’를 지켜준다. 그들은 며칠 만에 의뢰인이 신청한 내용이 담긴 게시물 대부분을 삭제한다. 또한 삭제 후에도 자료가 계속 유포될 것을 대비해 특정 기간 동안 관리해 주기도 한다.

디지털 장의사와 계약을 통한 사이버 폭력 피해의 해결. 깔끔하면서도 씁쓸한 방법이다. 피해자들은 신고할 곳도, 의지할 곳도, 상처를 치유 받을 곳도 변변치 않아 자신의 돈을 들여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다. 디지털 장의사, 김호진 대표는 “상담 고객 300명 중 사이버 성폭력 관련 문의는 한 달에 140~150명에 달하지만 청소년이나 나이 어린 피해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제 의뢰 하는 경우는 상담자 중 20%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수 천 개의 파일을 업로드하거나 유해 사이트를 운영한 경우에도 가해자는 선고유예나 벌금 100만 원 정도의 낮은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피해자는 몇 백 만원에 달하는 계약금이 없으면 자신이 당하는 피해를 멈추기도 힘든 것이다. 더 이상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들이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도록, 2차 피해로 상처가 곪지 않도록 디지털 장의사 외 그들을 지켜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현주  kyo6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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