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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호] 우리가 몸보다 믿었던

편집장l승인2017.09.11l수정2017.09.1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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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중팔구도 아니다. 십중십이었다. 김만구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교수와 여성환경연대에서 올해 3월 함께 진행했던 ‘생리대 방출 물질 검출 시험’ 결과가 8월 공개됐다. 국내 유통 중인 생리대 10여 종에서 독성이 포함된 총휘발성유기화합물질이 검출됐다. 이 중 벤젠, 스타이렌, 트라이메틸벤젠은 발암물질에 해당한다. ‘릴리안’부터 ‘좋은느낌’, ‘바디피트’, ‘위스퍼’, ‘순수한면’, ‘화이트’까지. 이 정도면 국내 생산 생리대의 전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리대는 시중에 팔리기 전에 반드시 식약처의 품질 검사를 받는다. 그러나 그 품질관리기준 항목에는 생식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휘발성유기화합물질이 누락되어 있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 회사들이 내세운 ‘기준에 맞게 생산했다’는 논리가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심지어 팬티라이너는 생리혈 처리 용품이 아닌 ‘공산품’으로 분류되어 식약처의 관리 대상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번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떠오른다. 살균제 회사의 비양심과 몰염치, 정부의 허술함이 불러온 비극적인 합작품이었다. 1994년부터 판매가 시작된 살균제는 2002년부터 이상 징후를 조금씩 내비쳤고 원인을 찾아낸 것은 그로부터 9년 뒤인 2011년이었다. 진상이 드러났을 때는 이미 1,200명이 넘는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뒤였다. 그로부터 또 다시 5년이 지나서야 옥시는 등 떠밀려 껍데기뿐인 사과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그 사과마저 듣지 못했고, 아직도 살균제 피해자 개별 보상은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사태의 양상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초로 논란이 되었던 릴리안 생리대의 제조사 ‘깨끗한나라’에서는 모두 추측성 내용일 뿐이며, 여론이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오히려 소비자를 탓하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생리일 수와 생리혈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생리통이 심해졌다’와 같은 피해자들의 고백이 나날이 늘어가는 데도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제 살길 찾기에 혈안인 그네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일말의 가책이라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여성의, 우리의 몸은 안녕하지 못하다. 일생 내내 가까운 곳에서 쌓인 발암물질이 우리를 좀먹다가 언젠가는 집어삼켜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소름이 끼친다. 무려 40년간 여성의 몸에, 그것도 생식기관에 직접 닿아왔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써야만 하는 제품인 생리대는 더 면밀한 검사를 받아야 했다. 더 엄정한 기준으로, 더 안전할 수 있도록 다루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지금껏 생리에 관한 이야기는 여성의 사적 경험으로 묶였고, 알아채지 못하게 쉬쉬해야 하는 일종의 금기로 여겨져 왔다. ‘별 것 아닌데 네가 예민해서 그래’라는 말은 몸의 이상 징후를 호소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들을 투정으로 치부했고, 그들을 침묵시켰다. 하지만 이제는 여성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다. 식약처는 충분한 역학조사와 모든 생리대의 전수조사를 실시해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 국민들의 알 권리 요구에 부응해야할 것이다. 민간에서의 문제 제기 후에야 정부의 늑장 대응이 이어지고 관리의 허점이 드러나는 이 악순환의 반복을 개선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사태를 계속 지켜봐야 한다. 피해자만 덩그러니 남아 그들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사라지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누구의 잘못인지, 죄인은 응당한 처벌을 받는지, 어떻게 잘못을 고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바뀌는지를 끝까지 두 눈 똑똑히 뜨고 보자. 그것이 케미포비아(Chemiphobia, 생활화학제품에 불안감을 느끼고 꺼리는 것)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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