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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호] “나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

군의문사 유족들이 출연한 연극 ‘이등병의 엄마’ 김지연 기자l승인20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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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의 아들만큼 내 아들도 귀합니다. 나라한테는 수많은 군인들 중 한 명일지 몰라도 제게는 하늘이고 땅입니다” 군에서 아들을 잃은 엄마가 절규한다. 잘 다녀오겠다며 떠난 아들이 갑자기 죽었는데 군에서는 죽음의 이유를 밝히는 대신 ‘네 아들이 잘못했다’며 진실을 덮으려고만 하고, 순직 인정은커녕 유족들에게 사과하지도 않는다. 무대에 올라 ‘나는 아들을 군대에 보낸 죄인입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은, 실제 군 의문사 사망자의 엄마들이다. 엄마들은 생때같은 아들을 군대에서 잃고, 그 이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죽은 아들의 상관에게서 성관계를 요구해오는 문자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군과 싸워온 어머니들이 직접 배우가 되어 연극 ‘이등병의 엄마’ 무대 위에 섰다.

◇ 유족들의 치유를 위한 연극 기획
이 연극을 기획한 사람은 인권운동가 고상만 씨다. 20여 년간 군 의문사 문제를 조사해온 고 씨가 직접 극본을 쓰고, 전국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배우가 되어 무대에 오른다. 활발한 사회적 활동으로 ‘촛불 배우’로 불리는 맹봉학 씨가 연기 지도를, 팟캐스트 ‘고상만의 수사반장’을 담당한 임대웅 PD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고상만 씨는 “1998년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군 의문사 유족들을 처음 만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분들과 함께 거리에서, 국방부 철문 앞에서, 부대에서, 여의도에서 목에 피켓을 건 채 매일 억울한 고통을 호소했다. 연극을 통해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진실을 알리는 동시에 국가에는 정책적 해결방안을 요구하려고 한다”며 연극을 기획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2,398명의 시민으로부터 총 6천 388만 9천 원의 후원을 받아 5월 19일 막이 오른 이 연극은 마지막 공연인 5월 28일까지 전회 매진을 이루었다. 26일 공연에는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연극을 관람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 두 달 간 연기 연습한 ‘엄마들’
대본은 고상만 씨가 그동안 만나온 유족들의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쓰였고, 9명의 엄마들이 직접 무대에 오른다. 공연을 위해 그동안 연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이들은 전문 배우들과 함께 두 달 동안 연기 연습을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고 신병준 이병의 어머니 김순복 씨는 “그때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매일 연습하면서도 매번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났다. 하지만  소리를 지르면서 스트레스도 풀게 되었다”며 연극 출연의 소감을 밝혔다.
한편 연극은 허구와 현실을 결합한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상복을 입은 엄마들은 아들의 영정을 목에 걸고 현실에서처럼 국방부 앞에 서서 “내 아들을 살려내라”며 울부짖는다. 주인공인 극중 엄마(김담희 분)가 아들 정호(김천 분)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각자의 아들 이름을 함께 외치고, 극 중간에는 두 명의 엄마가 무대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다. 공연 첫날인 19일은 고 윤영준 이병의 7주기 기일이었다. 무대 위에서 아들의 제사상을 차리며 어머니 박윤자 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함께 무대에 오른 유족들도 눈물을 흘렸다.

◇ 연극 통해 군 의문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요구
‘의무복무 중 사망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국 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직접 출연한 만큼, 연극은 정부와 군대를 향해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군 의문사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재구성이 그것이다. 한 해 평균 27만 명이 군에 입대하고, 그중 약 150명이 사망한다. 그중 3분의 2인 100명은 자살로 처리되지만 군대는 이들이 왜 자살했는지, 애초에 자살이 맞는 건지조차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그저 윗사람의 눈치를 보며 덮기에 급급하다. 군대 내에서 일어난 사고를 군 헌병대가 수사하니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질 리 없다. 계급 사회인 군의 특성상 하급자가 자기보다 높은 직급의 사람을 조사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직속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되었으나,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예산 낭비’를 이유로 해체시켰다. 이에 유족들이 국회에 항의 방문하자 신지호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유족들의 국회 출입을 금지시켰다. 유족들은 ‘반성문’까지 써가며 출입금지 취소를 호소했으나 신 의원은 받아주지 않았다.
“사망 사건이 있을 때, 군은 누가 방아쇠를 당겼고 누가 줄에 목을 맸나를 수사해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리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다. ‘왜’ 방아쇠를 당겼고 ‘왜’ 목을 맸는지를 밝히는 게 진짜 진실이다”라고 고상만 씨는 설명했다. 독립적인 민관 합동 조사기구가 설치되어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그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 이것이 연극의 주제이자 유족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핵심이다.

◇ “누구도 억울하게 죽지 않는 나라를 만들자”
1945년 국군 창설 이래 약 39,000명의 군인이 군에서 사망했다. 이틀에 세 명, 1년에 600여 명 꼴이다. 이 비극이 멈추어야 한다고, 억울하게 아들을 잃은 가족들의 눈물을 국가가 닦아주어야 한다고 연극은 말한다. 연극을 관람한 관객 김효주 씨는 “이렇게 아픔을 갖고 계신 어머니가 많음을 처음 알았다. 지금 사회는 약자들의 고통이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정권이 교체가 되었으니 어두운 곳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김지연 기자  r13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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