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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호] 과거와 현재, 우리는 가까워질 수 있을까?

-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이경민일반사회교육·15)l승인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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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을 선정한 이유는 ‘세대 간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장․노년층의 목소리를, 아니 그들의 삶을 이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본 영화를 선정함에 있어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진 바와 같이, 박근혜 정권의 CJ에 대한 외압으로 인한 영향으로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 정권의 코드 맞추기 영화가 제작되었으며, 본 영화 역시 그러한 불순한 의도가 반영되어있다는 점을 참고하여 비평을 읽어주길 바란다.
현재 이 영화에 ‘화자’의 위치에서 나오는 세대들은 한국 전쟁을 겪은 세대와 그 뒤의 베이비붐 세대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장년을 넘어서 노년층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들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들은 전쟁을 겪었고 나라에 돈이 없고 나라에 기댈 수가 없어서 외국에 3D 업종으로, 군인으로 팔려가면서(!) 그들이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그리고 우지 가족을 위해 일했다는 것을 추앙해달라는 것이 아닌, 부정하지도 말고 그냥 그대로 인정해달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우리 세대들이 듣기에는 교과서에서 어른들의 얘기로 계속 들어왔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처음 듣는 이야기들은 적었지만 영화를 통해 느끼는 감정은 달랐던 것 같다.
현재 통계상으로 노년층의 인구는 증가하고 있고 그들의 상황은 불안하다. 노인빈곤은 사회문제 중 하나이고 이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부실하다. 또한 그들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의 지위는 높지 않다. ‘틀딱충’으로 비견되는 노인혐오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그들은 왜 이렇게 불안한 위치가 되었고, 그들은 지금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례로 일부 노인들이 참여하는 태극기집회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그들이 집회를 나가고 있는 이유, 노인들이 집회에 나오게 하는 유인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분석하기를 하나가 먼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배제되고 있음을 느끼고,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라고 분석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는 미디어에서 관심이 멀어진 ‘노년층’들의 이야기를 잘 말해주고 있다. 영화 장면 중에 가족들이 다 모여 있는데 주인공 혼자 방 안에 있으면서 독백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통해 노인의 외로움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나아가 자식 세대에게 그들이 대화를 하지 않는 이유도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그 이유란 것은 결국 본인 생각을 자식 세대들이나 후세들이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너무나 빨리 성장해온 대한민국에서 각 세대들 간의 생각의 차이는 매우 큰 상황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어린 세대뿐만 아니라 노년층들도 이를 인지하고 소통하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소극적인 현상인 것이고, 이게 적극적으로 발현된 형태가 이제 예시를 들자면 저 태극기 집회로 보이는 본인의 말을 일방적으로 말하는 형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이 과연 다 노년층의 잘못일까? 젊은 세대들은 과연 그들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영화 장면 중에 어린 학생들이 대한민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놀리는 장면을 보면서 주인공이 본인 파독 광부 시절을 떠올리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화를 내는데, 주인공 친구가 학생들에게 ‘저 노인네 치매인가보다.’하면서 상황을 무마하는 장면이 있다. 어린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파독 광부라던가 월남 파병이라는 역사가 머나먼 얘기이고, 외국인 노동자를 그냥 놀리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린 학생은 그 역사를 함께 했던 사람인 주인공과 현대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의 발언으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를 겪었었던 노인에게 있는 마음의 상처를 건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노년 세대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상처를 건드는 등에 해를 끼치는 사례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 이제 정리해보면 현재의 세대 갈등에 대해서 영화와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1) 상호에 대한 소통의 두려움과 (2) 상호에 대한 부지(不知)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분쟁을 쉽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은 상대방을 본인 식으로 규정짓는 타자화를 통해,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혐오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합리화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고, 결국은 그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점진적으로라도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소통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필요성이 느껴진다.


이경민일반사회교육·15)  knu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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