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7.11.16 목 11:07

[403호/컬쳐노트] 소년이 온다

김지연l승인2017.05.15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제목: 소년이 온다 (2014)
작가: 한강
1980년 5월,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친구 정대가 사라졌다. 열다섯 살 동호는 정대를 찾기 위해 구청에 갔다가, 그곳에서 시신을 지키는 일을 맡아 눌러앉게 된다. 매일 수십 구씩 실려오는, 총에 맞고 칼에 찔리고 부패한 시신들의 머리맡에 촛불 하나씩을 밝히는 동호. 위험하다며 자신을 데리러 온 엄마에게 동호는 “저녁에 돌아갈 테니 기다려”라고 말한다. 그리고 33년이 흐른다. 동호는 끝내 돌아오지 않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꾸만 되살아나 그들을 찾아온다. ‘소년이 온다’. 이 소설의 제목이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소설 속 연극의 대사처럼, 80년 광주의 비극과 동호의 죽음은 은숙, 선주, 진수, 그리고 2013년의 작가 한강에게까지 깊은 흔적을 남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없었던 그때, 끝없는 폭력과 고문, 눈앞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의 기억을 그들은 끝내 떨쳐내지 못한다. 밤에 잠을 이루지도,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지도 못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라고 그들은 묻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결코 그럴 수 없다.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역설적으로 그들은 발견한다. 인간은 절대 그렇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그 누구도 더럽힐 수 없는, 연약하지만 깨끗한 영혼을 가졌다는 것. 방직공장에서 더듬더듬 노동법 공부를 하던 성희 언니의 말처럼, 결국 우리는 모두 고귀하다는 것.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부서지고 피 흘리고 죽어가면서, 그들은 끝내 자신들이 인간임을 증명해낸 것이다.
그리고 서른일곱번째 5월이 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었는가? 이제 우리는 폭력에서 자유로워진 걸까? 2009년, 용산에서 벌어진 참사를 보다가 작가는 중얼거린다. “저건 광주잖아.” 경찰의 농성 진압 과정에서 6명이 죽었다. 그리고 2014년, 304명의 사람들이 물속에 가라앉았다.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2016년에는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발포한 물대포에 맞아 숨을 거뒀다.
‘소년이 온다’. 이 소설의 제목은 현재형이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라고 묻는 소년의 목소리는 아직도 유효하다. 이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소설은 말한다. 분노와 슬픔뿐인 이 세상, 오늘도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이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야만 한다고, 서로의 손을 잡고 더 환한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동호는 엄마의 손을 잡고 햇빛 드는 쪽으로 이끈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김지연  r1301@naver.com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지연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이전홈페이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  대표전화: 043) 230-3340  |  Mail to: knuepress@daum.net
발행인: 류희찬  |  주간: 박현선  |  편집국장: 최원호  |  편집실장: 하주현/정규나  |  청소년보호책임자: 최원호
Copyright © 2017 한국교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