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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호]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하는 역할

현정우(컴퓨터교육·17)l승인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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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서로 마주칠 때마다 항상 가면을 쓴다.” 영화 <장미의 행렬>에 나오는 대사이다. 동시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관통하는 전제라고 생각한다. 그는 카메라를 통해서 사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찍었고,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숨기려 했던 진심에 다가가려 노력해 왔다
 카메라를 통해서 원하는 대상을 보여주려 하기보다 자기가 관찰했던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으려고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이 카메라 속의 인물들을 마치 자신의 모습처럼 느끼게 되면서 영화 속 인물들이 타자를 인식한 채 내세우는 위선과 거짓말을 더 가깝게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그리고 찍은 대상을 자신의 의도로 편집하고 보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대상을 매번 다르게 바라보고 영화의 궁극적인 목적을 잡아가기도 한다. 항상 자조적으로 인물들을 관찰하면서 때로는 인물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집중하는가 하면 진심을 파헤치기 위해 풍경을 반복하기도 하고, 감정에 집중하기 위해 장소를 반복하기도 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또한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하지만 이전에 그가 만들었던 영화들과는 여러 의미에서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홍상수 감독 본인의 영화사에서 만들어진 작품들부터 홍상수 영화의 앞부분에는 항상 영화를 대표하는 다채로운 크레딧들이 등장한다.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흘려 써진 글씨를 바탕으로 배경의 색이 바뀌거나 귀여운 사람 모양의 그림이 등장하기도 있다. 그런데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오프닝은 거의 유일하게 글씨도 딱딱한 명조체이고 배경마저 검은색 바탕으로 깜깜히 칠해져 있다. 적막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면 까만 화면에서 아무 기색 없이 곧장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이름이 올라오고 영화의 제목이 까맣게 울려 퍼진다. 오프닝을 통해서부터 감독이 이전의 자기 영화와는 이 영화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앞서 말했던 방식처럼 작가 본인이 관찰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찍으면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보다 직설적인 거짓들로 받아들이면서 부정적으로 느껴지게끔 만든다. 1부가 시작될 때와 2부가 시작될 때 사랑이라는 단어가 조금씩 언급이 된다. 1부와 2부 모두에서 영희의 곁에 선 사람들은 노골적인 가면을 쓴 채 영희를 대하고 마주하다가 사랑이라는 단어와 사실 앞에서 더 이상 본심에 다가설 용기를 내지 못하고 상처를 비롯한 존재 자체를 피하기 위해 영희에게 다른 곳으로 가자고 제안을 한다. 또한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사랑은 주로 이루어지기 힘들거나 상처가 군데군데 패인 사랑의 모습이 많은데, 사랑의 상처를 스스로 느끼고 속상해하면서도 사람들은 계속 그 사람이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을 해버리곤 마음을 정해버리고 만다.
상처와 고통을 포함한 사랑이라는 존재를 자꾸 피하려는 사람들의 곁에서 (역시 똑같이 사랑으로 가슴 아파하던) 영희는 사랑을 점점 믿지 않게 되고 사랑을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학적인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서로가 술을 마시면서 가면을 조금씩 벗겨가는 공간처럼 여겨졌던 술자리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타인들을 의미 없이 심판하고 본심을 의심하려 들기도 한다. 이전의 홍상수 영화의 술자리에서는 항상 사람 한 명만을 카메라 안에 배치함으로써 본심에 다가섰던 카메라가, 이 영화에서는 (영희가 홀로 버려진 듯한 장면을 제외한) 모든 장면에서 무조건 두 명 이상의 사람을 쇼트에 배치함으로써 그런 영희의 속마음에 대한 의심에 동조하는 듯이 움직이기까지 한다. 영화는 이전 영화에서 자주 쓰던 공간에의 반복이나 변주를 하지 않으면서 영희의 무분별한 자기 파괴와 카메라의 흔들림을 힘겹게 끝까지 안고 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고 홀로 자신의 본심에 따른 의지를 보이지 못했던 영희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 숏을 통해 자유를 얻게 된다. 마지막 감독과의 술자리에서 영희가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던 도중 장면이 갑작스럽게 바뀌면 영화의 중간에 나왔던 장면과 똑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영희가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해변에 누워있으면 남자 연출부 직원이 와서 그를 깨워주는 장면이다. 영화의 중간에 있었을 때 남자가 부른 후 카메라는 영희의 앞모습을 보여주고 그를 촬영부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같은 해변에 누워 있는 영희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영희를 촬영부원들이 있는 곳에서 멀어지게 만들어 그녀가 카메라 안에 홀로 남아있게 한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영희는 아주 나쁜 꿈을 꿨다는 말을 뒤로 한 채 앞으로 자꾸 걸어만 간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다. 마치 상처투성이가 되어 주저앉은 사람에게 그래도 걸어 나가야 한다는 희망이라도 주는 것처럼 말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영화가 여태까지 나왔던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 중에서 아주 개인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홍상수의 기존 영화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자조적이고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그곳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던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의 말 한마디와 카메라의 불안함을 통해 본심을 애써 피하려는 사람들의 거짓을 위태롭고 환멸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작가 본인이 영화 속에서 보여진 것 같은 사랑에 대한 상처를 직접 느꼈고, 그걸 피하면서 공격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기에 작품 세계에 큰 변화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공간과 화면, 사실을 통한 영화의 안과 밖을 분리시키려는 듯한 그의 의도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도 이런 의도는 자주 드러나는데, 유리창 밖의 청소부에게 신경 쓰지 않으려는 유리창 안의 사람들 같은 이미지적인 부분에서부터 시작해서 식당 바깥에서는 식당 안의 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소리를 제거하는 등의 표현적인 부분에서 안과 밖을 분리시키려는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홍상수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위한 동기가 되었던 사건이 존재했다는 점과 그 사건을 통해서 느낀 상처들이 이 영화에 표현되었다고 보는 데에 대한 하나의 맥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점에서 홍상수 감독이라는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외부의 시선과 내부의 고통에 대한 입구를 이 영화를 통해서 연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작가 본인이 느낀 점을 매체에 어떻게 대입하는가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평가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주관으로 작품을 보든 간에 관객, 수용자의 몫이 된다. 물론 어떤 작가들은 관객이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느낄 수 있도록 작품을 구성하지만 작가로써의 홍상수는 자신의 작품에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관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작가에 가깝다. 그의 작품세계에서는 받아들이고 사고하는 것이 더욱더 온전히 관객의 몫이 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그는 다만 자신의 고통을 느끼고 구성했다는 점에서, 그의 영화 안에서 관객 또한 자유롭게 판단하고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 세계 자신의 작품 안에서는 객관적이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가 본인의 고통을 표현하느라 또다른 타인의 상처까지 신경 쓰지 않은 점도 놓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작품 자체를 개인적이고 객관적인 매개체로 생각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본인의 느낌에 대한 관객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일종의 입구같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현정우(컴퓨터교육·17)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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