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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호] “루피는 왜 겨울에도 치마만 입나요?”

유아용 애니메이션 속 성차별, 고정된 성역할 학습시킬 위험성 있어 김지연 기자l승인2017.04.24l수정2017.04.2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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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의 눈사람에 장난을 친 뽀로로는 다리를 건너 도망친 뒤 “그것도 못 건너면서”라며 루피를 놀린다. 화가 난 루피는 다리에 올라가지만, 겁이 나서 중간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 인형극을 하던 루피의 비명소리를 들은 뽀로로, 크롱, 포비는 루피를 ‘구하기 위해’ 중무장을 하고 출동한다. 어린이들에게 ‘뽀통령’으로 불리는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의 내용이다. 장난기 많은 남자아이, 겁 많은 여자아이, 여자아이를 구해주는 남자아이 등 전형적인 성역할이 만화 속 캐릭터에 그대로 투영됐다. 이처럼 영유아들이 주로 시청하는 애니메이션에서도 성차별적 요소를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아동의 가치관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유아용 애니메이션 속 성차별에 대해 알아보았다.

◇ 남자는 ‘꼬마’, 여자는 ‘꼬마 숙녀’... 남녀 캐릭터 수 불균형도 심각
‘뽀롱뽀롱 뽀로로’에서 뽀로로와 친구들은 11명. 그중 여성(으로 인식되는) 캐릭터는 루피와 패티 두 명뿐이다. 루피는 분홍색 치마를 입고 ‘상냥하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캐릭터로, 고정관념 속의 전형적인 여자아이의 모습이다. 패티는 ‘리더십이 강하고’ ‘운동을 잘하는’ 캐릭터지만 다른 남자 캐릭터들에게 “예쁘다”는 말로 대상화되며, 역시 보라색 치마를 입고 등장한다.
다른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런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역시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꼬마버스 타요’의 캐릭터 소개에서 남자인 타요, 로기, 가니는 ‘꼬마 버스’인 반면 여자인 라니는 ‘상냥하고 귀엽지만 겁이 많은’ ‘애교 만점’ ‘꼬마 숙녀 버스’로 소개된다. 또 다른 인기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 역시 여자인 엠버만이 분홍색 리본을 달고 ‘상냥하고 남을 잘 배려한다’고 표현된다. 남자 캐릭터인 폴리, 로이, 헬리는 파랑, 빨강, 초록 등 다양한 색깔과 ‘용감함’, ‘듬직함’, ‘호기심 많음’ 등 여러 가지 성격을 부여받는다.
남녀 캐릭터의 수 불균형도 심각한 수준이다. 평균 5~6명의 주요 캐릭터 중 여자 캐릭터는 단 1~2명에 불과하다. ‘뽀롱뽀롱 뽀로로’, ‘로보카 폴리’, ‘꼬마버스 타요’, ‘냉장고 나라 코코몽’에서 제목에 등장하는 중심 캐릭터인 뽀로로, 폴리, 타요, 코코몽은 모두 남성으로, 자연히 이 남성 캐릭터의 이야기가 주가 된다. 또한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실시한 ‘2012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어린이’에 따르면 여성이 문제를 해결한 경우보다 남성이 해결한 경우가 약 3배가량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 애니메이션 속 성편견, 어린이의 성역할 개념 형성에 악영향 미쳐
이러한 성차별적 요소는 유아의 성역할 개념 형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2013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유아아동용 문화콘텐츠에 대한 양성평등 모니터링 분석연구’ 보고서는 ‘이미 성 관념이 형성된 성인의 경우 대중매체를 통해 받는 영향력이 미비하나 유아·아동기의 경우 그 영향력은 매우 크다. 유아의 경우 문화콘텐츠에 심어진 성 고정관념을 비판 없이 수용하여 이분법적인 성 역할을 습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인천여성민우회 활동가들은 “유아기는 자신의 성별을 인지하고, 미래 자신의 성역할을 상상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다. 양육자와 교사의 의식적인 자기검열과 적극적인 지도가 필요하다. 아이에게 다양한 상황을 설명해주고, 성차별적인 캐릭터를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대화를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과 함께 목각인형의 동작을 따라하는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진행하면서 깜짝 놀랐다. 남자아이들이 공간을 넓게 쓰면서 뒹굴기, 태권도 동작, 할아버지 흉내 등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반면 여자아이들은 못하겠다며 동작을 작게 했다. 이미 성역할 고정관념이 형성되어 있었던 거다. 이걸 오로지 미디어의 영향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맞는 것 같다”며 생각을 전했다.

◇ “차별적 요소 줄여달라” 청원 올린 초등학생들
이러한 애니메이션 속 성차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16년 7월 18일, 서울 용원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은 인터넷 청원사이트를 통해 EBS 우종범 사장에게 “애니메이션의 성차별적 내용을 줄여달라”는 내용의 청원을 올렸다. 수업 시간에 애니메이션을 직접 분석해본 학생들은 “저희 여동생도 EBS 만화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보고 있습니다. ‘뽀롱뽀롱 뽀로로’ 주인공 패티가 되고 싶다며 추운 겨울에 여름 치마를 입고 떨며 유치원에 간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배경은 겨울인데 “추우니까 바지로 갈아입어야지” 이런 내용은 안 나오는 것입니까?”, “만화에서 남자 주인공의 주요색은 파란색이고 여자 주인공의 주요색은 분홍색으로 나옵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아버지께서 분홍색 폴라티를 입고나오시자 동생들이 부끄러워하며 외출을 꺼려했습니다”라며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수업을 진행한 서한솔 선생님은 “실제 생활에서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수업을 해보자고 생각하다가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수업을 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 변화하는 애니메이션과 앞으로의 과제
이러한 목소리에 맞춰 애니메이션도 서서히 변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고정된 성 역할을 학습시킨다는 주장에 대해 “기획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부족한 부분은 시즌2에서 더욱 보강하겠다”라고 답한 ‘출동! 슈퍼윙스’의 제작사 ‘퍼니플럭스’는 시즌2에 분홍색이 아닌 회색과 파란색의 똑똑한 캐릭터 샛별을 등장시켰으며, 올해 3월에 방영을 시작한 ‘몰랑’에서 주인공 몰랑과 피우피우를 포함한 인물들은 성별 구분 없이 고고학자, 축구선수, 호텔 관리인 등 다양한 직업을 체험한다. 한국의 삼지 애니메이션이 제작에 참여한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는 여성 캐릭터가 도시를 구하는 내용이며, ‘두다다쿵’의 주인공 다다는 꼬마 탐험대의 리더로, 모험심이 강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인천여성민우회는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젠더감수성을 가져야 한다. 모험심, 고난을 극복하는 용기, 위기의 순간에 친구를 돌보는 리더십, 개인의 이익과 모두의 이익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하는 인간미를 가진 캐릭터가 남성으로 대표될 필요는 전혀 없다. 젠더화된 방식을 지양하고 성별을 초월한 캐릭터가 제시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김지연 기자  r13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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