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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호] <토니 에드만>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현정우(컴퓨터교육·17)l승인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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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에드만>에 처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칸 영화제 엠바고가 슬슬 풀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가 황금 종려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추측을 했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솔직한 반응들 또한 긍정적인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특히 웃다가 울게 만드는 영화라거나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준다는 등의 감상평들은 내가 이 영화를 ‘가족 영화’로써 기대하게 만들었고, 영화를 보기 직전까지만 해도 현대 사회의 흔한 가족 소외문제를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룬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토니 에드만>은 그런 가족 영화와는 거리가 먼 영화였다.
 <토니 에드만>은 가족이라는 틀이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보이지 않는 거리에 집중하는 영화였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를 보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만큼 설정되어 있느냐에 따라 상대방과의 거리를 인식하고 매번 다르게 행동하고 말을 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부분에 주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이 영화에는 두 명의 인물이 나온다. 한 명은 아버지 빈프리트이고, 한 명은 딸인 이네스이다. 빈프리트는 웃음과 장난치는 것을 매우 좋아하지만 이네스는 그런 부분보다 본인의 성공이나 일에 더 관심이 많다. 빈프리트에게 그런 이네스는 늘 어려운 존재이기만 하다. 그렇게 빈프리트는 이네스에게 더 가까워지고 딸이 알지 못하는 소소한 행복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에 이네스의 출장길을 따라나서게 된다. 영화는 그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놓치지 않고 정직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이런 ‘보여주는 과정’에 있어서 일상적이고 평범하면서 영화가 마치 우리 곁에서 바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먼저 카메라가 들고 찍기 기법으로 ‘어떻게 찍을까’보다 ‘무엇을 찍을까’에 더 주목하겠다는 듯이 인물들의 곁을 따라간다. 그리고 장면 사이를 넘어갈 때에는 꼭 점프 컷, 갑작스러운 숏 전환을 사용함으로써 영화 전체에 서사를 부여하지 않고 영화 속 시간을 하나의 현재로 묶어버린다.
게다가 화면의 톤도 우리가 눈으로 흔히 접할 수 있는 모습들과 비슷하게 맞춰져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 변화의 폭은 커지게 된다. 당장 곁의 일처럼 벌어지던 영화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빈프리트의 모습은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등장하고, 아무렇지 않게 영화를 보던 관객은 순간적인 큰 변화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게 된다. 이 영화가 2시간 40분 내내 서사적인 편집을 활용하지 않고 벌어지는 일 자체를 보여주기만 하면서도 관객을 몰입시키는 이유가 이런 부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 시피 <토니 에드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 집중하는 영화다. ‘늘 그랬던 것처럼’ 보여주는 영화 안에서 빈프리트가 이네스의 삶에 주는 변화는 전체적인 영화, 그리고 이네스의 삶에 큰 변화를 주지는 않는다. 빈프리트는 본인의 정체를 여러 차레 바꿔가면서 이네스에게 다가간다.
괴짜 프리랜서부터 시작해서, 유명 테니스 선수의 코치까지 토니 에드만이라는 같은 이름 아래에서 직업을 바꿔가며 이네스에게 사소한 행복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네스는 일이라는 방호벽 아래에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결코 바꾸려 하지 않고 이네스와 빈프리트 사이의 거리는 내내 일상적으로 보여주기만 하는 영화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서 똑같은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빈프리트는 커다란 불가리아 민속 가면을 뒤집어쓴 채 이네스의 생일 파티에 나타난다. 회사 동료와 지인들은 그런 가면을 신기해하고 이네스는 그 가면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게 된다. 집을 나서는 가면을 쫓아 나선 이네스는 그 가면이 아빠 빈프리트라는 추측을 하게 되고 처음으로 아빠를 끌어안아보게 된다.
다시 영화가 흐르고 빈프리트의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이네스와 빈프리트는 다시 만나게 된다. 이네스는 가면을 떠올리고 틀니를 끼고 왕관을 착용해 보인다. 빈프리트는 이네스에게 재밌어하면서 카메라를 갖고 오겠다며 화면 안에서 사라진다. 빈프리트는 돌아오지 않고 이네스는 왕관을 벗어던지고 틀니를 빼게 된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고 카메라는 빈프리트를 내몰고 바뀌지 않은 이네스를 보여주며 영화를 끝맺게 된다. 결국 영화 속에서 이네스가 다가갔을 때는 빈프리트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본인인지도 모르는 채로 다가갔을 때뿐이었으며 영화는 끝내 ‘사람’ 사이의 거리는 좁혀질 수 없다고 말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토니 에드만>이 사람 사이의 고정될 수밖에 없는 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영화 속에서 빈프리트와 이네스가 아버지와 딸이라는 정착적인 관계 속에서 움직이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둘 사이에 좁혀질 수 없는 어떤 세대적인 거리감이 분명히 느껴졌고, 그 거리 안에서 허울 없이 몸부림치는 빈프리트의 모습만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사람과의 사이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변화라는 행동만으로는 쉽게 바뀔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인정하며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토니 에드만>은 그런 어쩔 수 없는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영화다.


현정우(컴퓨터교육·17)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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