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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호] 참을 수 없는 백색의 두려움

이정태(수학교육·13)l승인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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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생활에서 나를 두렵게 하는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1교시 수업이 있는 날 눈을 떠보니 아침 10시 30분이었을 때. 전날 벼락치기 하고 받아든 시험지에 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을 때. 무심결에 긁은 체크카드가 잔액부족일 때. 이모티콘 넣을까 말까 12시간 고민하다가 좋아하던 애한테 카톡 보냈는데 12시간동안 답장이 없을 때. 답답해서 대화창을 열어봤는데 1이 없어졌을 때. (경험담 아니다.)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도 이 모든 상황이 두려웠다. 그리고 나열된 공포의 대상들로부터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나는 텅 빈 모습을 두려워한다.

아침 9시에 침대에는 있으나 강의실엔 없고, 빼곡해야 할 시험지에 잉크 한 방울 없고, 두둑해야 할 통장에 290원밖에 없는 것이 두렵다. 황량한 대화창이 두렵다. 그 순간이 닥치면 머리가 하얘지고 잠깐 동안 생각이 멈춘다. 텅 빈 모습과 정지된 머릿속. 나는 언제부턴가 두 이미지들 속에서 새하얀 도화지를 연상한다. 두려움을 느끼는 내 모습이 마치 새하얀 도화지 앞에서 얼어버린 꼬마 아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무런 그림도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가 너무나도 무섭다. 당장 채워넣지 않고서는 불안을 달랠 수가 없다. 강의실로 뛰어가고 싶고 빨리 통장잔고를 두둑히 하고 싶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백색의 두려움. 아무래도 나에게 백색공포증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백색공포증이 꼭 나만의 특별한 정신질환이라고 할 순 없다. 우리는 백색이 인간의 공포를 자아내는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백색으로 인해 볼품없이 타락해버린 유명한 도시를 살펴보자.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눈먼자들의 도시』가 바로 그 곳이다. 『눈먼자들의 도시』는 어느 도시에 원인 모를 집단적 실명이 발생한다는 설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소설은 어느 평범한 오후, 도로 위에서 신호등의 신호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초록불이 들어와도 앞의 차가 가질 않는다. 사람들은 경적을 울려보지만 차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미심쩍게 여긴 사람들은 하나둘씩 차에서 내려 문제의 차에 다가간다. 그런데 차의 창문이 내려가자 운전석에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운전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소리친다. “앞이, 앞이 안보여!” 사람들은 당황하긴 하지만 겁에 질린 남자를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도시의 모든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자와 별반 다를 것 없이 눈이 멀어버린다. 그렇게 비극이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소설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흥미로운 점은 『눈먼자들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실명 현상이 백색 실명이라는 점이다. 흔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암흑,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으로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소설은 도시에 닥친 재앙을 ‘백색의 악’, ‘백색 질병’, ‘백색 공포’ 등 백색을 나타내는 다양한 수식어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백색 실명의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도시는 문명사회의 모습을 벗어던져 버리고 철저히 야만과 탐욕만 남은 지옥으로 몰락한다. 깡패들은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여자들을 달라고 협박하고, 눈먼 자들이 모인 수용소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통제된다. 소설의 책장을 넘기다보면 이 모든 사태가 화이트아웃(White Out)의 공포에 인간들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결과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소설가 김영하도 자신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다음과 같은 통찰을 선보였다. 
「백색 캔버스. 원시인이 처음 예술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런 주장을 폈다. 그것은 인간 내부에 잠재해 있는 백색 공포 때문이라고. 텅 비어 있는 하얀 벽은 그 자체로 충분히 공포스럽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벽에다 낙서를 하고 번쩍이는 새 차의 표면에 칼로 흠집을 낸다. 가구가 없는,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은 그런 방이 두려워 사람들은 채우고 또 채운다.」

이렇게 현인들의 고마운 통찰 덕에 백색공포증이 나만 앓는 정신질환은 아님을 알았다. 그런데 이 깨달음을 얻고 나면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많은 백색공포증 환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력서에 텅 빈 칸이 너무나도 두려운 사람들. 그래서 매일같이 토익 스터디에 나가고, 봉사활동 인증서를 받고, 수상 경력을 쌓으려고 목을 매는 사람들. 또는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사람들. 시간이란 붓에다 아무런 물감도 없이 하루라는 캔버스를 훑었을 때, 그 텅 빈 캔버스를 참을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하루도 쉴 수 없는 사람들. 모두가 백색공포에 몸서리치는 사람들이다. 나는 자꾸만 그 사람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낀다. 우린 전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들은 가만히 있는 것마저 도태된다고 생각하여 흐르는 시간 속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욱여넣는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들을 보고 환자라고 조롱하거나 비웃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자신에게 묻고 싶을 뿐이다. 누가 당신에게 백색을 두려워하게 했는가? 왜 잉여롭게 보내는 하루를 부끄러워하게 됐고, 자기소개서에 공백으로 보낸 시간들을 해명해야만 하는가? 백색이 두려움의 대상임은 분명해졌지만 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는지는 아직 나로서도 얘기할 수가 없다.

 한 학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교수님의 깜짝 휴강이나 예기치 않은 임시공휴일. 당연히 누구에게나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불안감부터 엄습해올 때가 있다. ‘그런데, 이제 뭐하지?’ 라는 생각 때문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지만 마땅한 취미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자니 조금은 구역질이 나는 일이고. 결국 노트북 앞에 앉아서 하릴없이 키보드나 두들긴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길지 않은 글도 나의 백색공포증에서 기인한 것이다. 누가 나에게 티 없이 맑은 흰색을 두려워하게 만든 걸까? 그러나 이 와중에도 흰색 바탕에 내가 만든 문장들이 빼곡히 들어서는 걸 보면서 괜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정태(수학교육·13)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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