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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호] 쓰레기봉투

김성치(초등교육·14)l승인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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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저는 곧잘 실랑이를 벌이곤 했습니다. 협소한 공간을 채운 탁한 공기와 불만 가득한 저는 애초에 서로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 놓인 채 짊어져야 할 시간이 점점 무게를 불리면 사태는 점차 심각해집니다. 침묵을 깨뜨리는 것은 웅웅 메아리치는 냉장고 소리이거나 껌뻑이는 형광등 소리입니다. 방이 저를 자꾸 약 올리는 것입니다. 
  대꾸도 할 수 없는 상대와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이다 지칠 때면 담배를 피우러 골목에 나가곤 했습니다. 방 안에 갇혀있다 밖에 나오면 온갖 것이 다 제 관찰 대상이 됩니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낯설게 여겨지니까요. 해가 벌써 지다니, 한참을 멍하니 하늘을 보다 그제야 시계를 확인하고. 비가 오고 있었네, 또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우산을 챙기러 후다닥 돌아가고. 뭐 이런 식입니다. 똑같은 골목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자취방 생활에 찌든 제게 약간의 운치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바로 그때 저는 묘한 장면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한 마리의 고양이가 어느 쓰레기봉투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골목을 드나들며 종종 마주치곤 했던 여러 길고양이들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녀석은 쓰레기봉투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곧이어 발톱을 드러내어 봉투를 찢기 시작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팽팽하게 부풀어 있던 분홍색 십 리터짜리 쓰레기봉투는 크게 상처를 입어 지켜보기 참 안쓰러운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봉투 안에 담겨 있던 쓰레기들은 하나 둘씩 거리 위로 튀어나오면서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분리수거했어야 할 커피 캔, 컵라면 용기, 남은 야식 조금과 구겨진 종이컵, 종이 쪼가리들과 휴지 나부랭이들. 감춰져 봉인되어 있다가 어디론가 수거되었어야 할 쓰레기들이 보란 듯 자기 정체를 밝히는 장면은 우습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괴기한 면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을 법한, 오히려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 잡동사니들을 우연히 마주치게 된 저는 마치 어느 추리 만화의 탐정이 된 것 같았습니다. 이윽고 전 고양이가 놀라지 않을 만큼 조용한 걸음으로 찢어진 쓰레기봉투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한 발, 다시 한 발…, 아주 조심스럽게. 쓰레기봉투에 가까이 다가선 저는 뜻밖에도 그것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채고야 말았습니다.

‘익숙한 무언가를 미처 알아보지 못했을 때 느끼는 당혹스러움’
  
  내가 버렸던 쓰레기봉투를 보고 그렇게나 호기심을 가졌다니. 꽤 오랜 기간 방 한구석에서 온갖 쓰레기들을 묵묵히 받아낸 바로 그 봉투. 이처럼 제게 익숙한 물건을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는 그것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기까지 했던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요. 단칸방에 놓인 몇 안 되는 물건들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둔감한 기질 때문일까요, 아니면 쓰레기봉투란 것이 당최 누군가의 관심을 끌기에는 너무 볼품없기 때문일까요.
  방 안으로 돌아온 저는 이에 대한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버리고 싶은 것, 혹은 더 이상 쓸모없어진 일상의 부산물들에 놀랍도록 빠르게 냉담한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봉투에 대충 쑤셔 넣은 쓰레기들은 꼬깃꼬깃해진 채로 봉투에 담기기 전까지는 분명 요긴하게 쓰였을 물건이며, 그것들 안에는 저의 내밀한 버릇과 습관이 숨어있는 데도 말입니다. 
  또한 옆구리 터져버린 저의 쓰레기봉투를 보았을 때에 느낀 충격은, 단지 저의 아둔함에 대한 깨달음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도 봉투에서 새어나온 쓰레기들이 과거 사용자의 생활 행태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사실이 놀라웠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개적인 장소에 제 일상의 파편들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상황은 제게 일종의 섬뜩함과 수치심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방에다 고이 모셔두고 아끼는 몇몇 물건보다도, 저기 쏟아진 쓰레기들이 나에 관해 더 잘 설명할 수 있겠다는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한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

  뜻밖의 계기로 쓰레기봉투를 들여다보고 놀라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날은 지난 추운 겨울이 이곳 다락리에 엉거주춤 자리를 마련한 때였습니다. 그때에 저는 일 년 간의 자취를 마무리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감당해내는 방법에 대해 궁리하였습니다. 이는 여유를 갈망하는 인간이 여유롭지 않은 공간과 시간에서 어떻게 살아내는지에 관한 제 나름의 탐구로 이어졌으며, 곧 한 권의 시집을 만들기 위한 동기를 제공하였습니다. 
  난생 처음 진지한 자세로 시를 쓰는 것에 몰두하는 와중 겪은 골목에서의 일화는 작품이 가진 진실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고찰하도록 독려했습니다. 온몸을 칭칭 감은 가식을 풀어헤치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글을 만들어내려면, 내가 아끼는 것이 아니라 쉽게 버리곤 하는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고. 무심결에 버려둔 쓰레기들처럼 내가 버린 것들이 진정으로 내 개인적인 면을 낱낱이 드러낼 수 있다고. 
  쓰레기봉투를 통해 얻은 감상을 바탕으로 작업 방향성을 잡은 저는 지겨운 겨울을 간신히 빠져나왔고 마침내 한 권의 시집을 만들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쓰레기를 버리듯 쓴 시가 모인 결과물이라 칭할 수 있으니, 누군가는 대충 훑어본 뒤 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안에서 잠시 스쳐 지나간 삶의 흔적을 보고 소소한 감동을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어봅니다.
  제가 지나온 길에 떨어뜨린 무수한 것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하나씩 거두어 차곡차곡 모아두려고 합니다.  


김성치(초등교육·14)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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