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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호] 바꼈다? 바꿨다!

이동석(국어교육) 교수l승인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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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길을 가다가 휴대폰 대리점의 유리문에 붙은 “사장님이 바꼈어요.”라는 광고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이게 무슨 말이지? 그래서 어쩌라고?’ 이렇게 생각하며 스쳐 지나가다가 한참을 가고 나서야 뒤늦게 이 문장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주인이 바뀌어 이전보다 더 싸게 판다는 의미였을 텐데, 눈치가 빠르지 못한 사람에게는 해석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다소 난해한 문장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문장의 의미보다 더 난해한 것은 바로 ‘바꼈어요’라는 표기이다. 최근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낚였다’는 말은 ‘낚이었다’의 준말이다. ‘ㅣ’와 ‘ㅓ’의 연쇄가 ‘ㅕ’로 축약된 것으로서, ‘ㅣ+ㅓ=ㅕ’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이처럼 ‘낚였다’가 ‘낚이었다’의 준말이라면 ‘바꼈어요’는 당연히 ‘바끼었어요’의 준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에 ‘바끼다’라는 말은 없다. ‘바꼈어요’는 ‘바끼었어요’의 준말이 아니라 ‘바뀌었어요’의 준말이다. 
5음절인 ‘바뀌었어요’를 구어에서는 대개 4음절로 줄여 발음한다. 이때 축약되는 음절은 ‘뀌’와 ‘었’이다. 음절이 축약된다는 것은 곧 모음이 축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모음 ‘ㅟ’와 ‘ㅓ’가 하나의 모음으로 축약된다는 것인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ㅕ’는 ‘ㅟ’와 ‘ㅓ’가 아니라 ‘ㅣ’와 ‘ㅓ’가 축약된 것이므로 이 경우에는 사용할 수 없다. 
결국 ‘바뀌었어요’의 준말을 제대로 표기하기 위해서는 ‘ㅟ’와 ‘ㅓ’를 하나로 축약한 모음자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지금까지 ‘ㅟ’와 ‘ㅓ’를 하나의 모음자로 축약하여 사용한 적이 없다. ‘ㅣ+ㅏ=ㅑ, ㅣ+ㅗ=ㅛ, ㅣ+ㅐ=ㅒ, ㅣ+ㅔ=ㅖ, ㅗ+ㅏ=ㅘ, ㅜ+ㅓ=ㅝ’ 등 훈민정음 창제 때부터 축약된 모음자를 많이 써 왔음에도 불구하고 ‘ㅟ’와 ‘ㅓ’를 합한 모음자는 만들어 쓴 적이 없다. 
우리가 현재 ‘바뀌었어요’를 4음절로 적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발음상으로는 ‘ㅟ’와 ‘ㅓ’가 축약되지만, 표기상으로는 이 발음을 적을 글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ㅕ’를 써 보기도 하지만, ‘ㅕ’는 ‘ㅣ’와 ‘ㅓ’의 축약형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동안 왜 ‘ㅟ’와 ‘ㅓ’를 축약한 모음자를 만들어 사용하지 않았을까? 정인지 후서를 보면 훈민정음으로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등을 모두 적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왜 정작 우리말에 실제로 존재하는 ‘ㅟ’와 ‘ㅓ’를 축약한 소리를 적을 수 있는 글자를 만들지 않았던 것일까? 세종대왕이 실수를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비밀은 세종 당시 모음의 음가와 현대국어 모음의 음가가 다르다는 데 있다. 우리는 ‘ㅐ, ㅔ’를 각각 단모음 [ɛ], [e]로 발음하지만, 세종 당시에는 이러한 단모음 발음이 없었다. 세종 당시에는 ‘ㅐ, ㅔ’를 이중모음 [aj], [əj]로 발음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서 ‘사내[男], 애[兒], 새[間]’ 등을 ‘사나이, 아이, 사이’라고도 하는데, 전자는 세종 이후에 단모음화된 발음이고, 후자는 세종 때에 이중모음이었던 발음이 화석화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이 외에도 ‘ㅐ, ㅔ’를 세종 때에 이중모음으로 발음했다는 증거는 많이 있지만, 전문적인 내용이므로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세종 당시에 ‘ㅐ, ㅔ’를 이중모음 [aj], [əj]로 발음했다면 ‘ㅚ, ㅟ’는 어떻게 발음했을까? 당연히 [oj], [uj]로 발음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바뀌어’를 축약할 때 지금처럼 ‘ㅟ’[wi]와 ‘ㅓ’[ə]를 축약하는 게 아니라 [uj]와 [ə]를 축약했을 것이다. ‘ㅟ’의 발음이 세종 당시와 지금 차이를 보이므로, 당연히 ‘ㅟ’와 ‘ㅓ’를 축약한 발음도 세종 당시와 지금이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결국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ㅟ’와 ‘ㅓ’를 축약한 발음을 담당하는 글자를 따로 만들지 않았던 것은 세종의 실수가 아니라 그 당시와 지금의 발음이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글자들은 모두 세종 당시에 만든 것들이다. 그런데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발음이 생겼다면 이 발음을 적기 위한 글자를 새로 만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바뀌어’의 축약형이 분명히 발음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발음을 그대로 표기할 수 없다는 것은 표음문자로서의 한글의 장점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유일한 해결책은 ‘ㅟ’와 ‘ㅓ’가 축약된 발음을 담당하는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이다. 아마도 그 글자의 모양은 ‘ㅜㅕ’가 될 것이다. ‘바뀌어’의 축약형을 ‘바’로 표기할 수 있도록 한다면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이다. 


이동석(국어교육) 교수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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