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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호] 연필

김성치(초등교육·14)l승인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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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학기 연재했던 ‘얼렁뚱땅 문화 살롱’은 종료합니다. 이번부터는 ‘소품 제작’이라는 꼭지를 시작하려 합니다.

  품은 뜻이 썩 다양한 단어, 소품(小品). 문자 그대로 작은 모형이라는 의미도 있고, 규모가 작은 예술품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모두 마음에 듭니다만, 새로운 연재를 기획하면서 절 가장 설레게 만든 소품의 다른 뜻은, 바로 ‘변변치 못한 물건’입니다. 무언가 충분치 않거나 어딘가 흠 잡을 데 있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우리 주변의 어느 물건을 소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마주하는 소폭의 결여(缺如)는 언제나 우리에게 애틋함을 갖도록 만듭니다.
  단어의 의미를 나란히 놓고 차분히 살펴보니, 서로가 사뭇 겹쳐 있다고 느낍니다. 소품이란 완벽이라 부르기엔 민망한 감이 있지만, 약간의 운이 따라준다면 그것은 아기자기한 예술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시야에 흔히 들어오는 잡동사니들은 그 빈번한 출몰 탓에 애석하게도 서서히 우리 관심에서 멀어져 있지만, 만일 그 물건에 소소한 이야기(아마도 약간의 행운)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하나의 ‘변변치 못한 예술 작품’으로나마 탈바꿈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글을 쓰는 게 즐거웠고 나 자신이 자유롭다는 내추럴한 감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연필을 깎는 것은 꽤 번거로운 일입니다. 한 손으론 연필을 단단히 쥠과 동시에 천천히 돌려야 합니다. 이것은 견고한 집중과 섬세한 조작을 요합니다. 일단 연필을 쥐는 법이 잘 갖춰져야 연필심을 중심으로 삼아 고르게 깎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커터 칼을 그러쥐고 적당한 힘을 주어 나뭇결을 밀어내듯 깎아야 합니다. 이때 과한 힘을 가할 경우 한구석 푹 패여 결과물의 생김새가 탐탁지 않게 됩니다. 최악의 상황은 심이 부러지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이죠.
  물론 이 고단한 작업은 연필깎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이루어집니다. 연필깎이는 그 절차가 간단하여 신속하게 연필을 깎을 수 있으나, 연필 특유의 다각형 기둥 모양을 보존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매끄럽고 뾰족하게 깎인 연필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 연필깎이를 사용하면 연필 본연의 멋을 잃게 되는 것 아닌지 걱정이 듭니다. 너무 치밀하게 연마된 연필엔 사용 시 얻게 되는 부드러움의 낭만이 다소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제 손으로 연필을 깎아 쓰지 못한 시기엔 연필깎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도처에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은색 열차를 닮은 제품 말이죠. 당시에 연필깎이를 사용하지 않고도 연필을 멋들어지게 깎을 줄 아는 사람은 담임선생님이나 어머니였습니다. 손수 깎은 연필엔 무어라 형용키 어려운 감성이 내려있음을 그때에도 느낀 것일까요, 어린 시절 저는 종종 어머니에게 연필을 깎아달라고 졸랐습니다. 어머니께선 귀찮아 하시다가도 이내 건네받은 연필을 정성스레 깎아 주셨습니다. 연필 깎는 어머니의 손은 유연하게 움직였지만 동작의 반복 사이에선 은근한 단단함이 전해졌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죽 샤프와 잉크 펜만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와서 뜬금없이 연필을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구매한 이유는 딱히 거창한 게 아니고 그저 연필의 색이 예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단 한 번도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새 연필을 꺼내어 보니, 난생 처음 보는 물건처럼 낯설게 여겨졌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이것의 첫 번째 주인은 나이고, 앞으로 이 물건은 점차 나를 닮아갈 것이라는 예언과도 같은 생각이 퍼뜩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한 자루의 연필과 조우한 뒤에, 제겐 최초 사용자로서 마땅히 이것을 스스로 깎아야 할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어머니가 보여준 연필 깎는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순간 느낀 유연함과 단단함을 어머니의 손에서 제 손으로 끌어오기 위해 최선을 다했죠. 연필 쥔 손에선 긴장을 놓지 않되, 칼을 쥔 손은 되도록 편안하고 거침없이 움직이자. 약 삼십 분 동안은 아주 불편한 자세로 꼼지락댔던 것 같아요. 다행히도 제가 직접 만든 결과물은 제 기대보다도 훨씬 나았습니다. 어머니 솜씨에 견주어도 큰 차이가 없었죠.
  그 뒤에 연필을 가지고 몇몇 좋은 글귀를 베껴 쓰거나, 짧은 일기와 시를 썼습니다. 새로운 발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괜스레 연필을 굴려보기도 하고, 한참을 만지작거리기도 했죠. 내가 직접 조각한 물건을 사용한다는 자부심, 흑연이 지면을 긁으며 만드는 마찰, 그를 따라 세상 밖에 나온 글자들. 이 모든 것이 제게 선사하는 감각이란 굉장히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저만의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귀중한 감동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쓰면 쓸수록 몸체가 짧아지는, 이 물건 특유의 유한성 역시 색다른 감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연필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헌신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연필이 닳아졌다 하여 잉크를 충전하거나 심을 새로 갈아 끼울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제 역할을 위해 스스로를 휘발시키는 모습은 글 한 줄 적는 데도 낑낑거리는 저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든든한 친구를 얻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우리 안의 독창성을 어떻게 끄집어낼 수 있을까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허나 처음엔 그리 대단하지 않았던 이 단순한 생각은 시간이 흘러 어느덧 욕심으로 자라났습니다. 직접 무엇인가를 만들어 보겠다, 직접 만든 것으로 나를 꾸미고 싶다, 예술 작품을 창작해보고 싶다. 덩치를 불린 욕심을 제가 어떻게 감당해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끝까지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옆에 놓인 연필처럼 자신을 조금씩 덜어내며 솔직하게 쓰고 싶습니다.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닳고 닳은 뒤에 새로 꺼내 쓸 연필도 아직 여럿 남아 있으니까요.


김성치(초등교육·14)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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