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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호] 그들의 폭소

이정태(수학·13)l승인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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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평소에 인터넷 기사를 자주 본다. 교양 있는 척한다고 오해를 살까봐 해명하자면 주로 기사를 안 보고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본다. 요즘 댓글은 기사에 대한 토론장이라기보다 ‘드립력 경연대회’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말 재밌는 인간들이 많다. 보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진짜 이 사람들이 해학과 풍자의 민족이구나.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드립력을 선사하는 걸 보면 폭소를 넘어 감탄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프로드립러’를 만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댓글들을 아래로 내리다보면 오히려 미간을 내천(川)자로 만드는 악플들이 듬성듬성 눈에 띈다. 소위 말하는 ‘고인드립(죽은 사람을 비하하는 개그)’, ‘패드립(패륜에 맞먹는 수위의 개그)’으로 댓글란을 더럽히는 인간들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 역겨운 댓글까지 참아가면서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이러려고 기사를 읽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 댓글들도 얼마간의 추천을 받고 또 답글로 수많은 ㅋ자가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XX 웃기네 ㅋㅋㅋㅋ” 등의 반응이다. 이런 반응들을 보고 있으면 실제로 그 사람들이 모니터 앞에 엎어져서 육성으로 깔깔거리고 있는 것 같아 등골이 서늘하기까지 하다. 누가 읽어도 천인공노할 댓글을 쓰는 사람들, 그 댓글에 자지러지게 웃는 사람들, 수많은 비추천에도 꿋꿋이 추천을 누르는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인 걸까?

 일단 누가 봐도 그 사람들이 정상인 것 같지는 않으니, 독자들이 허락한다면 그들을 미친 인간들이라고 칭하고 싶다. 그런 다음 떠올려보자. 일반적인 미친놈들, 미친년들은 어떤 모습이었더라? TV나 영화 속에서 보았던 미친 사람들 말이다. 아마 한, 두 명 정도의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을 것인데, 자세히 보면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이유도 없이 실실 웃고 다닌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미친놈 캐릭터들이 다 그러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 배우 강혜정이 머리에 꽃을 달고 연기했던 여일이가 그랬고,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에게 얻어맞으면서도 깔깔 대던 조커가 그랬다. 다시 말해 댓글 창을 누비는 미친 인간들 이전에도 미친 인간들은 이미 웃음을 참지 못하고 늘 히죽히죽거리고 다녔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어져 온 그 웃음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사람은 미친 상태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미쳤다는 것은 어느 순간 그 사람에게 심각한 계기가 찾아와 서서히 현재의 상태로 변화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궁금해야 할 것은 미친 사람의 정신 상태가 어떻게 변하길래 그렇게 웃고 다니냐는 것이다. 다행히도 여기 우리와 똑같은 궁금증으로 문제를 바라본 사람이 있다. 바로 책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의 저자 김치샐러드(본명 윤명진)다. 그는 밀레이(1829~1896)의 명화 「오필리아」를 보며 미친 인간의 공통된 모습들에 주목했다.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나오는 인물인데, 자신의 사랑 때문에 완전히 미쳐버리는 인물로 등장한다. 햄릿을 사랑했던 그녀는 햄릿이 이상하게 변한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아버지마저 칼로 찔러 죽여버렸다는 것을 알고 미쳐버리고, 마침내 스스로 강물 속으로 들어가 목숨을 끊는다. 밀레이의 그림은 바로 그녀의 자살 장면을 담아낸 것이다. 여기서 김치샐러드는 그녀가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메고, 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는 것에 주목한다. 

 사랑으로 인해 소중했던 모든 것을 잃은 오필리아는 미쳐버린 나머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뒤덮는다. ‘이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아름답게 빛나는 눈도, 젊음으로 빛나는 이빨도 필요 없어.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 결국 오필리아는 인간으로서 추구하던 아름다움, 젊음, 사랑, 그리고 육신마저 내던지고 자연으로 돌아가버린다. 끝내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와 세속에 대한 거부가 그녀를 집어삼킨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이길 포기하고 자연이 되길 선택했다. 목에 걸린 꽃, 몸을 담근 물, 그 모두가 인간이길 거부하는 그녀의 열망이었던 셈이다. 

 오필리아와 같이 인간이길 포기하면 인간 세계는 너무나도 우스운 꼴이 돼버린다. 별 중요하지 않은 것에 열을 올리고, 어차피 사라질 부와 명예에 목숨 걸고, 결국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모르고 오만하게 자연을 이용해먹는 짓까지. 그 모습에 참을 수 없어서 미친 사람들은 웃는다. 멀쩡한 인간들이 자신들을 미쳤다고 놀려대지만 실은 멀쩡한 인간들이 더 멍청하다는 것을 알아서 웃는다. 그리고 오필리아가 살아있던 때가 훨씬 지난 지금, 이제 미친 인간들은 더 공격적으로 변했다. 익명성의 가면에 힘입어 자신들이 왜 그렇게 웃어댔는지를 세상에 거침없이 내뱉는다. 비웃음의 대상도 가리질 않는다. 무의미한 것에 매달리는 꼴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법과 인간의 도덕, 윤리까지도 가뿐하게 비웃는다. 고인을 비하하고, 입에 남의 부모님을 들먹이고, 정의를 들먹이면 선비라고 놀려댄다. 결국 그들은 인간 윤리에 대한 무정부주의자가 된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윤리 의식을 자랑스럽게 포기한다.

 물론 그들은 예상된 최후를 맞는다. 비추천 세례와 수많은 질타, 간혹 사이버수사대의 부름까지 받는다. 그렇지만 강력한 비판과 처벌이 그들의 폭소를 멈추지는 못한다. 더 단단하고 강력하게 제재할수록 무정부주의자들은 견고해진 사회가 더 우습게 보일 뿐이다. 결국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자들과 인간이길 거부하는 자들, 이 양자 간의 대립은 멈추지 않는다. 어느 기사를 클릭해도 키보드 배틀은 존재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참 재밌다. 섞일 수 없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있는 댓글란이. 어쩌면 공존할 수 없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려고, 나는 매일 댓글란을 들여다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정태(수학·13)  knu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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