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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호] 4차 산업 혁명과 교과 통합

전민지(야탑초등학교 교사)l승인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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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3월, 전 세계 교육계가 핀란드에 주목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핀란드 교육 당국이 현상 및 프로젝트 중심 주제로 개별 교과를 완전히 통합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타전했다. 다른 국외 언론들도 이 교육 ‘혁신’을 앞다투어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실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로 시행된 핀란드 국가수준교육과정에 따르면 핀란드 학생들은 1년 간 최소 하나 이상의 현상 중심 학습(Phenomenon-based Learning) 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여기서 다양한 교과를 통합하는 주제를 수 주간에 걸쳐 다룬다. 그리고 다른 시간에는 여전히 수학, 역사와 같은 기존의 교과들을 배운다. 언론들이 다시 정정 보도를 내면서 교과 통합 이슈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교육 관계자들에게 남긴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핀란드 출신의 교육학자 살버그 교수는 오보를 지적하며 새 교육 강령에 담긴 교과 통합에 대한 메시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핀란드 교육 당국은 교과 통합의 기조가 80년대부터 자연스레 학교 문화에 스며들도록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과 통합이란 무엇이고, 핀란드는 왜 이를 추구하는가? 오늘날의 분절된 교과 중심 교육 과정은 산업 혁명 초창기의 유산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효율과 생산성을 중시해 노동의 과정을 분업화했고, 노동자들은 효율적인 분업을 위해 각자의 역량을 전문화해야 했다. 교육 또한 여기에 발맞추어 세부 분야별로 전문화된 인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두었고 그 결과 교과별로 분절되었다. 하지만 기술 융합과 사물 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 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기존의 분절적 교과를 통한 교육의 유효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제 전체 작업 과정을 분절하여 자동화할 수 있는 일은 인간이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과 자질을 살릴 수 있는 지점에 있다. 그 영역은 전체를 아울러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다양한 분야의 관점과 개념을 융합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능력을 요구한다.
  일, 그리고 일에 필요한 자질이 질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학습과 교과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교과는 학습자들에게 세계를 보는 눈을 길러준다. 인류의 유산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체계화한 것이 학문이고, 그 학문과 학습이 만나는 곳에 교과가 자리한다. 바꿔 말하면, 교과는 삶의 다양한 모습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며, 그 총체를 우리는 ‘교육’이라고 부른다. 교수학적 변환론의 대표적인 연구자인 슈바야르 교수는 수업에서 다뤄지는 지식의 종류를 학문적 지식, 가르칠 지식, 학습된 지식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교사의 전문성은 학문을 교과로 구성하고, 학습으로 조직하는 능력으로 결정된다고 보았다. 즉 교육의 최종적인 목적이 학문적 체계를 전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의 자아실현을 돕고 사회·경제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교육이 교과의 틀에 얽매여선 안 된다.
  학교 교육에서 학생들은 교과 단위로 분할된 수업을 들으며, 영역별로 나누어진 단원에 맞춰 순차적으로 학습을 진행한다. 일반적으로 교수·학습은 지식의 이해로부터 시작되어, 적용·분석·종합·평가의 단계를 밟도록 구성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교과 내에서 지식을 이해시키는 데에 그칠 뿐, 이후 단계를 거쳐 고등 사고 능력을 함양하는 데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까닭은 한정된 수업 시간이나 교사의 전문성 부족이 그 원인일 수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문제’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한 지식 위주의 수업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기계적으로 순서를 밟아나가면 풀리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마주칠 문제는 교과서에서처럼 단순하지 않으며, 보다 통합적인 접근과 해법을 필요로 한다. 문제가 하나의 분야로 한정되지 않고, 여러 분야들이 만나 접하는 교점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와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제도권 교육에서는 통합의 기제를 어떻게 발현시키고 있는지 살펴보자.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 융합형 인재 양성”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에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과목을 신설하여 이전의 ‘공통사회’, ‘공통과학’보다는 진일보한 모습을 보인다. 이전의 ‘공통’ 과목들이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봉합’에 그쳤다면, ‘통합’ 과목은 그 이름에서도 의지를 엿볼 수 있듯, 단원별로 각 세부 과목들의 핵심 아이디어를 녹여내 주제에 다각도로 접근한다. 또한 이러한 기제를 발전시켜 문·이과 통합, 나아가 수능 체제를 개선한다는 야심찬 포부도 담고 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통합의 기조가 점진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만큼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이전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통합의 기제가 발현되는 구체적인 방법은 등장하지 않아 아쉽다. 새 교육과정은 이전 교육과정에 이어 범교과 학습 주제나 주제별 통합 교수학습을 포함하고 있다. 이전처럼 교육 과정 재구성을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에 맡겨두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하기에는 장애가 많다. 우선 담임교사가 대부분의 수업을 진행하는 초등학교에서도, 교과별로 필요한 요소를 뽑아내 학급 수준 교육 과정을 재구성해 실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교사는 매우 드물다. 중·고등학교에 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과목별 담당 교사들 간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므로 학교 차원의 노력에 더하여 제도적 지원까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교과 통합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이해도 부족하다. 사회적 차원의 논의와 교육 당국의 장기적인 청사진 또한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국교육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개별 교과가 기본 개념이나 세부적인 시각을 학습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여전히 교과교육 존치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통합의 기제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당장 모든 교과를 폐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교과 완전 통합이 부분적인 주제 중심 접근보다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얻기까지는 더 많은 현장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문제는 현재의 교과 중심의 분과적인 접근만으로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기 힘들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교사들의 역량 강화와 그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그 해답일 수 있다. 교사들은 교육 과정을 성취기준 중심으로 분석하여 교육 내용의 핵심 요소를 추출해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주제를 선정하여 그 안에서 성취 요소들 간 유기적인 흐름이 생기도록 조직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 과정 ‘재구성’을 위해서는 창의적인 교육 과정을 고안할 수 있는 교사의 역량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 양성 기관에서 예비교사들을 ‘교육 과정 전문가’로 준비시킬 뿐만 아니라 국가 수준 및 시·도 교육청 수준에서 교사 대상 연수를 개설하여 수시로 재교육할 필요가 있다. 교육 과정을 보는 시각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교사 개인 혹은 집단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야 한다. 교육 과정 재구성은 교과의 수가 많을수록, 주제의 유기성을 살리고자 할수록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교과별로 전문화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여러 교사들의 집단지성이 발휘되면 이는 보다 수월하게 달성될 수 있다. 분과를 넘어서는 협력적이고 통섭적인 학교 문화, 교원 문화를 조성해야 하는 이유다. 초등학교에서는 동학년 간 협의를 통해 주제와 연관된 교과별, 단원별 학습 요소를 통합할 수 있다. 수업에 대한 사전 연구가 선행되면 주제 중심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조금 더 복잡해지겠지만 범교과 학습 주제나 계기 교육을 주제로 주제 통합의 물꼬를 틀 수 있다. 범교과 학습 주제의 경우 교과 내에서 지도할 수 있지만 교과 간 접근을 할 수 있고 특히 창의적 체험활동과도 연계하여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만큼 여러 교과의 교사들이 협력하여 프로젝트 학습 모듈을 구성할 수 있다.
  교과 통합은 단지 선진국의 교육 정책을 무작정 좇기 위함이 아니다. 교육계의 국제적인 흐름이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당위도 아니다. 학생들을 자주적이고, 능률적이고, 전인적인 인간으로 키워내기 위한 시대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남은 과제는 무수히 많다. 교과의 연계로 핵심 개념과 역량을 도출하고 이를 근거로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주제’와 ‘문제’로 교수학습 장면을 채우게 되면 학습의 경험도 개별화되므로 표준화에서 벗어난 평가도 필요해진다. 나아가 교육의 목표, 내용, 교수학습, 평가의 일관성과 합목적성을 고려하여 교과 통합을 위한 장기적 구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민지(야탑초등학교 교사)  knu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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